2016-17년 쉬추킨 컬렉션 (1)
루이비통 재단의 전시를 소개하는 첫 장면에서, 나는 시간상 가장 먼저 열린 전시가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전시를 선택했다. 루이비통 재단 (Fondation Louis Vuitton)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개최한 《Icônes de l’art moderne: la Collection Chtchoukine》은 단순히 위대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명작전이 아니었다. 이 전시는 “한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20세기 미술사의 방향을 결정했는가”라는 질문을, 하나의 컬렉션이 형성되고 분산되며 다시 모이기까지의 궤적을 통해 설득력 있게 입증한 사례였다. 루이비통 재단은 이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의 기원을 예술가가 아닌 컬렉터의 시선에서 다시 서술한다.
오늘날 개인이 모마 (Museum of Modern Art) 나 더 맷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을,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쉬추킨이라는 인물은 경이롭다. 그러나 이 컬렉션의 진정한 가치는 규모나 희소성에 있지 않다. 그것은 당대에 아직 검증되지 않았던 미학을 알아보고, 그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감당해낸 판단의 축적이었다. 미술관이라는 제도가 작품의 가치를 보증하기 이전에, 쉬추킨은 자신의 눈과 직관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 대담함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놀라울 정도다.
도대체 쉬추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던 작품들에 끌리게 했을까. 그는 단순한 부유한 수집가였을까, 아니면 동시대 미술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쉬추킨을 ‘위대한 컬렉터’라는 결과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결정을 내리던 인간의 자리로 다시 불러온다.
Sergei Shchukin(1854–1936)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대형 섬유 상인이자, 20세기 초 유럽 모더니즘을 가장 선제적으로 수용한 컬렉터였다. 그는 인상주의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던 시기에 모네를 수집했고, 세잔이 아직 ‘난해한 화가’로 평가받던 시절 그의 구조적 회화를 구입했으며, 마티스와 피카소가 미술사적 위상을 확립하기 이전부터 이들의 작품을 대규모로 소장했다.
쉬추킨의 위상은 단순히 “많이 샀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그는 아직 미술사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작품들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반복함으로써 하나의 방향성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그는 이미 완성된 가치를 소비한 컬렉터가 아니라, 형성 중인 변화를 함께 감당한 컬렉터였다. 이 점에서 쉬추킨은 미술사를 ‘수집한’ 인물이 아니라, 미술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한 인물로 평가된다.
《Icônes de l’art moderne: la Collection Chtchoukine》은 약 127점 규모로 구성된 전시로, 한 개인의 컬렉션을 통해 현대미술의 기원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한 프로젝트였다. 이 전시의 핵심은 걸작의 나열이 아니라, 변화의 궤적을 따라 구성된 구조에 있다. 쉬추킨은 특정 작가의 대표작 한 점이 아니라, 스타일과 사고가 이동해가는 과정을 함께 소장했다. 그 결과 그의 집은 하나의 사적 미술관이 되었고, 모스크바 자택은 당시 젊은 러시아 예술가들에게 사실상 현대미술을 접하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했다.
전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들 역시, 오늘날 교과서적 ‘걸작’이기 이전에 쉬추킨이 위험을 감수하고 선택했던 문제적 회화들이었다. 클로드 모네의 후기 연작, 폴 세잔의 구조적 정물과 풍경, 폴 고갱의 타히티 시기 회화는 인상주의 이후 회화가 감각의 재현을 넘어, 회화 자체의 질서와 세계관을 재구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세잔의 작품은 이후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결정적 연결 고리로서, 쉬추킨 컬렉션이 취향의 집합을 넘어 미술사적 흐름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전시의 중심에는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가 있었다. 마티스의 〈춤〉(1909–10)과 〈음악〉 연작은 쉬추킨의 주문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색채와 리듬을 통해 회화가 감정과 신체 감각을 직접적으로 환기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 피카소의 초기 입체주의 회화들은 대상의 분해를 통해, 회화가 더 이상 현실을 닮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급진적 전환을 제시한다. 쉬추킨은 이 두 작가를 나란히 수집함으로써, 20세기 회화를 관통하는 두 축—색채의 해방과 형태의 해체—을 하나의 시야 안에 병치했다.
여기에 앙리 루소, 앙드레 드랭, 반 고흐의 작품이 더해지며 쉬추킨 컬렉션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작품들이 위대해진 것은 시대가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 개인이 먼저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쉬추킨의 선택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현대미술의 기원을 형성한 역사적 판단으로 기록된다.
루이비통 재단이 수많은 컬렉터 중 쉬추킨을 선택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쉬추킨은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순간을 가장 명확하게 포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컬렉션은 취향의 기록이 아니라, 판단의 연대기다. 동시에 이 전시는 루이비통 재단이 단순한 기업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사적 서술에 직접 개입하는 공공 문화 기관임을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 개인의 컬렉션을 통해 현대미술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은, 작가와 양식 중심으로 구축되어온 전통적 미술사 서술에 대한 명확한 방법론적 개입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쉬추킨의 컬렉션은 국유화되었고, 이후 스테이트 아미타쥬 박물관 (State Hermitage Museum)과 푸쉬킨 스테이트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로 분산된다.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 이 작품들은 ‘형식주의’ 혹은 ‘퇴폐 미술’로 낙인찍혀 수십 년간 공개되지 못했다. 루이비통 재단에서의 전시는 바로 이 단절을 넘어, 흩어졌던 작품들을 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서사 안에 다시 모은 사건이었다. 러시아 국립 미술관들이 대규모 대여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전시의 역사적 무게를 증명한다.
쉬추킨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한 시대의 취향을 앞당겼고, 제도보다 빠르게 도착한 감각이었다. 《Icônes de l’art moderne》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대미술은 예술가만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본 눈, 위험을 감수한 선택, 그리고 작품을 공적 장으로 밀어 올린 컬렉터의 역할이 함께 작동했다. 개인이 공부하고, 수집하고, 투자하고, 탐구한 선택이 오늘날의 미술사 지형을 형성했다는 사실은, 지금 이 시대의 컬렉터들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쉬추킨은 그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며, 루이비통 재단은 이 전시를 통해 컬렉터라는 존재를 미술사의 공동 저자로 복권시켰다. 이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만약 쉬추킨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미술의 지도는 과연 같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