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난데...

3화: 유산 이후, 다시 생명을 품기까지

by Diana H

결혼을 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모든 소비재의 가격이 폭등하고,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들이 일상이 되면서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끼던 시기였다. 연애를 1년도 채 하지 않고 결혼식을 올렸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신혼’으로 온전히 보내고 싶었다. 내가 상상했던 신혼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코로나 시대의 신혼은 달랐다. 어디를 가지 않아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결혼을 하면 사람들은 으레 묻는다.
“아기는 언제 가질 거예요?”

왜 궁금해하는지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실제로 들으니까, 나는 절대 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와 남편은 조금 더 신혼을 즐기고 싶었다. 둘 다 건강했고,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단단한 확신도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자기가 바쁜게 조금 지나고 조금이라도 더 자기 시간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내가 아이를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아기를 함께 많이 많이 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기에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코로나기간인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베이비들을 지켜보며,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키는 과정에 따르는 제약들을 보면서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해졌다. 그래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진 뒤, 여행도 충분히 다니고 나서 “이제 슬슬 아이를 가져볼까”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임신을 했다.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안정기가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알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양가 부모님과 친한 친구 두 명에게는 소식을 전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모습을 보며, ‘아니, 진작에 아이를 가질 걸 그랬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술을 거의 못 드시는 아버님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과음을 하셨고,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귀가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만큼 우리 아이는 모두의 축복 속에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하지만 또 일상적으로 생활하라는 의사선생님들의 이야기도 경청하며 바쁘고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2022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업무 미팅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아래로 피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화장실로 향했다. 임신 중이니 생리일 리가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병원에서 들은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아기집이 생기자마자 유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아기를 직접 보지도 못했는데, 아기집에서 유산이라니. 병원에서는 “다행히” 소파 수술 없이 자연 유산이 되었고, 며칠만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행히’라는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남편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시댁 식구들. 누구보다 내 임신 소식에 기뻐하던 사람이 남편이었기에, 그의 실망하고 슬퍼할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몸도 마음도 버티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워낙 건강한 탓에 생리통이 거의 없던 사람인데, 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고, 마음은 더 아팠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은 계속해야 했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 대표님뿐인 작은 스타트업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님에도, 이상하게도 너무 창피했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왜 나만.
왜 하필 나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너무너무 미안했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나의 아기에게, 그리고 나의 가족들에게.


이렇게, 나의 첫 임신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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