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사랑하는 여자가 엄마가 되었다

8화: 다시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by Diana H

회사가 스타트업이었기에 탄력근무제를 운영하기는 했다. 하지만 모두가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다. 제도는 자유로웠지만, 사람들은 정시 출퇴근을 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평균 나이가 높은 스타트업인지라, 대화를 하는 것을 선호했지, notion이나 zoom은 어려워하는 분들이 계셨다. 대면 미팅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젊은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나는 양쪽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성향만 놓고 보면 나는 꽤 보수적인 편이다. 사무실에 나가서 얼굴을 보며 일하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조차도 임신을 하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배가 점점 나오고 병원에서는 거의 처방처럼 말했다.


“최대한 누워 계세요.”

"회사는 그러면..."


난 남편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아이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신청할 대상도 없었기에 회사에 양해를 구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 시기는 회사에서도 가장 바쁜 시기였다. 나는 세일즈 팀장이었고 모든 동력을 끌고 와서 프로젝트 진행을 가속화해야만 했다. 작가님들에게 계속 연락을 해야 했으며, 내가 모든 상황을 진도지휘하고 있었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직접 사용해 보실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 내 역할이었다.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리하여, 노트북을 배 위에 올려놓고 누운 상태로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오히려 회사에 출근했을 때보다 더 오래 일하게 되었다. 밥 먹는 8분? 정도 빼고 그냥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회사에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 오래 일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고 월급이 더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업무를 강행했다.


나는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내가 진심을 다해 작가님들이 사용해 보셨으면 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그 정도까지 왜 일을 해?”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임신했다고 해 서서 내 커리어를 느슨하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는 임산부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결혼한 여성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특권을 요구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부분을 더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특권을 누리고 있지 않고, 누구보다 더 모범을 보여야 하는 리더로서 말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며칠 후 다시 병원에 갔다. 그리고 또 같은 말을 들었다.


“열심히 안 누워 계신 것 같은데요? 계속 누워 계세요.”


집에 와서 혼자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말했다.


나는 일을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임신했다고 해서 내 커리어가 끊기는 것도 싫다고.


출산하고 나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남편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은 일단 일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내가 힘든 것을 남편은 절대 원치 않았다. 내가 안 힘들고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면 좋겠어서 남편이 자기는 죽을 듯이 일을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가족이 즉 아이가 세상의 전부인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커리어는 나중에 다시 하면 되잖아.”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더 속상했다. 왜 내가 일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왜 계속하고 싶어 하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여자 형제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인지 딸에게 동생을 하나 더 낳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물론 형제자매라고 해서 꼭 성향이 맞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는 친구나 언니, 동생 같은 사람들이 더 끈끈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나는 회사를 휴직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내가 맡은 일이었다. 그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 작가님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모두 내가 해왔다. 그래서 인수인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업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후에 오는 피드백은 인수인계를 받은 분이 이어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때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구나.


그래서인지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죄인 같기도 했다.


특히 나처럼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일에 몰입할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에게는 임신 때문에 휴직을 한다는 것이 정말 큰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의 유산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와는 약속을 했었다. 너는 꼭 지키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호해 줄 존재로 나를 희생할 것이라고. 정말 지키고 싶은 아이였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정리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임신 기간을 이왕이면 잘 보내보자고.


휴직 신청서를 냈다. 복귀할 날짜도 계산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를 틀었다. 이제 쉬어야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나는 또 다른 것을 검색하고 있었다.


자격증 시험이었다.


가만히 쉬는 법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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