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눕 불가한 사람

7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의 임신 이야기

by Diana H

유산을 겪고 난 뒤, 나는 병원에서 아예 원장님을 지정해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우리 원장님은 유명했다. 예쁘고, 직설적이며, 단호했다. 산모들 사이에서는 ‘단호백’이라 불렸고, 울면서 선생님을 바꿔 달라는 이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실제로 내 친구들 중에도 그 단호함에 마음이 상해 병원을 옮긴 사람이 있었다.


의사와 변호사는 확정적인 말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애매한 위로보다, 불편하더라도 명확한 진단을 원했다. 특히 남편은 예측 가능한 범위까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원장님은 늘 간결하게 말했다.
“지금 상태는 이렇습니다.”
“이 리스크는 이 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조심하세요.”

논리와 근거가 있는 설명. 나는 그 단호함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체중 관리를 하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임신한 산모에게 “체중 증가를 주의하세요”라는 말은 예민한 시기에 충분히 날카롭게 들릴 수 있다. 호르몬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을 뒤집어 놓고, 몸은 낯설게 변해간다. 그 상황에서의 한마디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선생님은 가끔 이런 농담(?)도 하셨다.

“체중 증가 조심하세요. 아직 아기는 0.5kg도 안되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체중이고 뭐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아이의 안전.


나는 임신 기간 동안 과도한 체중 증가가 아이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특별한 먹덧도 없었다. 일도 계속했고, 운동도 멈추지 않았다. 크로스핏과 F45, 달리기를 하며 하루 30분은 반드시 몸을 움직이던 사람이었기에, 임신 후에도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남산을 걸었다. 다만 근력 운동은 조심했다. 이상하게도 평소에 찾지 않던 돈가스와 라면이 자주 당겼다. 가장 좋아하던 회는 거의 먹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탈이 나면 약을 먹을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던 걸까.


먹고 싶으면 먹었다. 과자도 먹었다. 완벽하게 통제하려 애쓰지 않았다. 다만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검진을 갈 때마다 나는 매번 불안했다. 안정기를 지나도 유산이 될 수 있다는 말, 두 번 반복되면 습관성 유산이 될 수 있다는 말,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사례들. 검색창은 언제나 최악의 이야기를 먼저 보여주었다. 그래서 오히려 일에 더 매달렸다. 집중할 대상이 있어야 불안이 줄어들었다.


회사에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업무는 쏟아졌고, 내가 멈추면 프로젝트가 멈추는 구조였다. 나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회사도 날 믿고 있었기에, 내 일은 내가 책임지고 싶었다. 여전히 일에서는 완벽주의자였다. 놓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밤이 되면 달라졌다.


낮 동안의 강한 척을 내려놓고, 매일 기도했다. 이 아이가, 나에게 다시 찾아온 이 생명이, 끝까지 나와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검진에서 들은 말.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으면 좋겠습니다.”
“복직근이 약해서 아이가 조금 아래로 자리 잡을 수 있어요. 최대한 누워 계세요.”


누워 있으라고?


첫 생각은 그것이었다.
‘누워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운동은?’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인데?’


지금 와서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워커홀릭이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회사 화장실에서 두 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