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 화장실에서 두 줄을 보았다.

6화: 완벽주의 팀장이 엄마가 되던 순간

by Diana H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 말이 내 삶에 정확히 들어맞던 시절이 있었다.


스타트업에 다니던 때였다.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야 했고, 인력은 부족했다. 팀장이었지만 팀원들을 트레이닝할 시간에 차라리 내가 해버리는 편이 효율적일 만큼, 모든 일이 동시에 몰려왔다. 미팅, 데이터 수집과 정리, 검수, 영업, 회사 홍보와 마케팅까지. 돌이켜보면, 나는 몇 사람의 몫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힘들면서도 즐거웠다. 성과가 보였고, 진전이 있었고,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른 뒤라 미화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시간이 흐르면 좋은 기억만 남긴다. 나의 뇌 보호 장치인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꽤 예민했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태도로 하나도 빠짐없이 해내려 애썼으니까 힘들었던 것도 맞았을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매일 배란일을 체크하기 위해 소변 검사 키트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10분 넘게 서 있던 시간. 문득 랩탑을 들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 결국 휴대폰으로 메일을 확인하며 서 있었지만, 그 장면이 문득 우습게 느껴졌다.


'나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도 두어번 들었다... 커리어의 속도와 생명의 시간은 전혀 다른 리듬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두 줄.

그 짧은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미친…”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는 눈물이 흘렀다. 너무 기뻐서, 너무 놀라서, 믿기지 않아서. 그리고 너무 감사해서. 이제까지 임신이 안되었던 이유가 다 내가 못나서 내가 잘못해서 내가 혹시라도 무엇을 하지 않아서 인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의 그 기분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도 그때의 내가 떠올라 웃음이 나다가도 다시 울컥해진다.


남편에게 당장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보다 이전의 유산으로 인한 더 큰 속상함과 상실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에 ‘내 탓’처럼 남아 있던 기억. 혹시 또 상처가 되면 어쩌지. 혹시 내가 섣불리 기뻐했다가 다시 무너지면 어쩌지. 몇 분 사이에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맞는 걸까?
꿈은 아닐까?
병원에 바로 가야 확실해 지겠지?
아직 몇 주는 더 기다려야 안정기에 접어들텐데.


그 모든 생각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이어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다시 한 번, 소중한 생명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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