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까르띠에 - 전설이 된 아름다움의 역사 (5)

시대의 질서를 기록한 아카이브

by Diana H

귀족 사회의 질서를 시각화한 티아라


2011년 1,270만 달러라는 기록적 낙찰가를 쓰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 티아라’로 알려진 도너스마르크 다이아몬드 티아라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19세기 유럽 귀족 사회의 질서와 권위를 시각적으로 번역한 상징적 오브제였다. 이 작품은 약 1870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7세기부터 이어진 프로이센의 명문 가문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Henckel von Donnersmarck) 가문이 100년 이상 소장해 온 대표적 ‘가문의 보석(dynastic jewel)’이었다.


gala.jpg Henckel von Donnersmarck Tiara (출처: Gala)


19세기 후반, 티아라는 왕실과 대귀족 여성만이 착용할 수 있는 의례적 장신구였다. 혼례, 즉위식, 공식 만찬 등 권력과 위계가 드러나는 자리에서 티아라는 혈통·가문의 역사·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일종의 시각적 문장(heraldry) 역할을 했다. 특히 다이아몬드 티아라는 귀족 계급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소유할 수 있었기에, 착용 그 자체가 곧 권력 구조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theroyalwatchers.jpg Henckel von Donnersmarck (출처: The Royal Watchers)


도너스마르크 가문의 중심인물 귀도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1830–1916)는 금·은 광산, 제철·철도 사업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산업 귀족으로 성장했고, 비스마르크와의 정치적 네트워크를 통해 제국 내 영향력을 강화한 실력자였다. 그의 부인 카테리나 백작부인 역시 유럽 사교계에서 ‘우아함의 기준’으로 불리던 인물이었으며, 그녀가 공식 행사에서 이 티아라를 착용했다는 기록은 이 보석의 사회적 의미를 더욱 강화시킨다. 즉, 이 티아라는 한 가문의 경제력·정치력·사회적 위신이 조직적으로 응축된 물질적 문서였다.


Collage_Fotor.jpg Henckel von Donnersmarck (출처: Königliche Juwelen: Verkauft)


조형적으로도 이 작품은 귀족 사회의 미적 기준을 정교하게 구현한다. 가랜드(garland) 스타일의 유려한 곡선, 균형 잡힌 스크롤 모티프, 촛불·가스등 아래에서 반짝임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다이아몬드 드롭(drops), 그리고 금속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게 제작된 실버-골드 세팅(silver-topped gold)은 19세기 최상급 세공의 정점이었다. 브릴리언트 컷 이전의 러시안 컷 다이아몬드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빛은, 현대 시장에서는 거의 재현할 수 없는 시대적 감성을 담고 있다.


Vintage bridal tiaras_Sothebys Geneva auction_Cartier_Diamond tiara.jpg High Jewelry Cartier Tiara (출처: The Jewellery Editor)


그렇다면 왜 이 티아라는 2011년 경매에서 이토록 높은 가격을 기록했을까?


첫째, 티아라라는 장르 자체가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다는 점, 둘째, 도너스마르크 가문이라는 확고한 프로비넌스, 셋째, 19세기 세공 기술의 보존 가치, 넷째, 까르띠에가 유럽 엘리트의 공식 보석 공급자로 자리 잡던 시기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127743007.jpg Tiaras of the Eras at Sotheby's Hong Kong, (출처: Alain.R.Truong)

까르띠에는 19세기말부터 왕실·귀족의 의례용 보석을 제작하며 “사회적 위계를 가장 우아하게 시각화하는 메종”으로 성장했으며, 도너스마르크 티아라는 그 상징적 출발점을 보여주는 핵심 작품이다. 결국 이 티아라의 가격은 단순히 원석과 디자인의 가치가 아니라, 한 시대의 권력·미학·사회 구조가 응축된 문화적 기록에 대한 가격이다. 도너스마르크 티아라는 까르띠에가 왜 오늘날까지 ‘주얼리의 제왕’으로 불리는지 그 기원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2012_CKS_05968_0322_000(a_late_19th_century_diamond_tiara031821).jpg A late 19th century diamond tiara (출처: Christie's)


이제까지 설명한 경매 기록들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까르띠에의 가치는 단순히 보석을 정교하게 세팅하는 기술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서사, 사회적 계급 구조, 문화적 취향, 희소한 광물 자원, 그리고 메종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기술적 혁신이 복합적으로 결합하며 만들어낸 구조다. 오늘날에도 까르띠에의 작품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초기작들과 앤티크 피스가 경매에서 폭발적 프리미엄을 형성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까르띠에는 아름다운 오브제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기억’을 보석이라는 매체 안에 봉인해 온 하우스이기 때문이다. 희소한 원석과 뛰어난 세공 기술은 물론 중요하지만, 까르띠에의 작품은 언제나 그 물질 이상의 질문을 동반한다.


2024_GNV_23039_0059_000(mid-20th_century_diamond_necklace060606).jpg Mid-20th century diamond necklace (출처: Christie's)


이 보석을 누가 사용했는가.
어떤 시대적 환경 속에서 디자인되었는가.
누가 이 디자인을 주문했고, 어떤 취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그리고 그 작품은 어떤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응축하고 있는가.


이러한 서사적 축적은 까르띠에 주얼리를 단순한 고가의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희소성선택성을 전제로 한 문화적 작품으로 인식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download (4).jpeg Art Deco Cartier Image (출처: Sotheby's)


19세기말 메종의 탄생 이후 까르띠에는 왕실, 예술가, 정치·경제 엘리트, 배우와 사교계 등 세계의 미적 기준을 결정하던 소수의 집단과 긴밀히 관계를 맺어왔다. 그들의 삶은 곧 까르띠에의 역사였고, 까르띠에의 보석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문서가 되었다. 어떤 작품은 사랑의 서약을, 또 어떤 작품은 제국의 흥망을, 혹은 미적 감각의 전환점을 상징하며 오늘까지 전해진다.


Cartier-London.jpg 런던의 까르띠에 매장 (출처: Love Luxury)


따라서 까르띠에의 경매 기록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히 ‘고가의 보석을 감상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권력, 사랑과 욕망, 문화와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얽혀 왔는지를 읽어내는 하나의 문화적 연구에 가깝다. 경매장은 이러한 서사가 다시 호출되는 극장이며, 까르띠에는 이 복합적인 결을 가장 우아하고 정교한 형식으로 구현해 온 메종이다. 이처럼 까르띠에의 작품은 럭셔리를 넘어선 디자인 오브제이자, 각 시대의 감정·권력·미학·사회적 구조를 압축한 상징적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까르띠에의 보석을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역사적 작품’이자 '시대의 거울'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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