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띠 프루티(Tutti Frutti) 컬렉션이 오늘날 경매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보석의 희귀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유럽과 미국 상류층의 문화적 취향, 식민지 시대의 권력 구조, 그리고 20세기 초 국제 사교계의 상징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작품이었다. 1920~30년대의 뚜띠 프루티 주얼리를 소장했던 이들은 대부분 유럽 왕실, 프랑스 사교계, 미국 재벌 가문 등 당대의 문화 권력을 형성하던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취향은 곧 글로벌 상류층의 미적 기준을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나폴레옹의 후손이자 정신분석 연구로도 유명한 마리 보나파르트, 싱어 재봉틀 상속녀이자 샤넬과 발렌시아가의 패션을 이끌었던 데이지 펠로우즈, 미국 재벌가 여성들이 뚜띠 프루티 주얼리를 착용한 순간부터 이 디자인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그들의 시대·계급·취향을 하나로 응축한 일종의 문화적 기호가 되었다.
이 시기의 유럽은 식민지에서 유입된 원석과 이국적 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였고, 인도 무굴 제국의 조각 (glyptic) 전통은 ‘이국적 세련됨(exotic sophistication)’을 상징하며 상류층의 취향을 자극했다.
까르띠에가 1911년 델리 대관식을 계기로 영국령 인도의 보석 문화와 직접 접촉하며 무굴식 조각 스톤을 도입한 것은 단순한 스타일 차용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의 문화적 권력이 보석 디자인 언어에 투영된 대표적 사례였다. 인도 장인들이 정교하게 조각한 에메랄드·루비·사파이어를 유럽 아르 데코의 기하학적 구성 속에 배치한 뚜띠 프루티 작품들은, 그 자체로 제국의 권력관계와 문화적 욕망을 반영한 오브제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이 작품들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이유는 바로 이 복합적인 역사적 배경에 있다. 즉, 뚜띠 프루티는 단순히 색색의 보석을 조합한 디자인이 아니라, 20세기 초 세계 질서와 상류층의 취향,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하던 시대의 공기를 담은 하나의 상징적 기록이다.
도너스마르크 티아라가 19세기 귀족 질서를 상징한다면, 2014년 제네바 크리스티즈 ‘Magnificent Jewels’에서 약 1,750만 달러에 낙찰된 까르띠에 벨 에포크 다이아몬드 코르사주 브로치(A Belle Époque Diamond Devant-de-Corsage Brooch, by Cartier)는 20세기 초 장식예술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질서를 응축한 상징물이다. 이 작품은 1912년 까르띠에가 플래티넘으로 제작한 대형 데방-드-코르사주 브로치로, 34.08캐럿 페어 컷, 23.55캐럿 오벌 컷, 6.51캐럿 마르키즈 컷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은방울꽃(lily-of-the-valley) 모티프의 링크와 팔메트 장식을 촘촘히 세팅한 구조를 가진다.
이 브로치는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솔로몬 바르나토 조엘(Solomon Barnato Joel, 1865–1931)이 자신의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 네 개를 들고 까르띠에를 찾아가 “이 돌을 중심으로 한 브로치를 만들어 달라”라고 주문하면서 탄생했다. 그는 1901년부터 1931년까지 드비어스(De Beers) 콘솔리데이티드 다이아몬드 마인즈의 이사로 활동한 인물로, 영국 제국의 금융 자본과 식민지 자원을 연결하는 전형적인 ‘벨 에포크형 자본가’였다. 다시 말해, 이 브로치는 남아프리카 광산에서 캐낸 원석이 런던과 파리의 금융·사교 네트워크를 거쳐 까르띠에의 아틀리에에 이르는, 제국주의 시대 자본과 욕망의 흐름 자체를 시각화한 오브제라 할 수 있다.
데방-드-코르사주(devant-de-corsage)는 원래 드레스의 상반신 전체를 덮는 ‘스토머커(stomacher)’형 장식에서 발전한 유형으로, 벨 에포크 시기에는 왕족과 대귀족 여성만이 만찬·오페라·무도회에서 착용할 수 있는 최상급 보석으로 기능했다. 이 브로치 역시 가슴 중앙에 세로로 길게 떨어지는 구조를 통해, 착용자의 몸을 하나의 ‘빛의 화면’으로 연출한다. 플래티넘 초박형 세팅 덕분에 금속 프레임은 최소화되고, 올드 컷 다이아몬드들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어, 촛불과 가스등, 초기 전기 조명 아래에서 극대화된 반짝임을 만들어낸다. 이런 ‘빛과 선의 미학’은 정치·경제적 안정과 기술 혁신이 맞물려 낙관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벨 에포크 상류층의 미적 이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경매 기록 역시 이 작품의 복합적 가치를 반영한다. 2014년 크리스티즈 제네바에서 이 브로치는 “A Passion for Jewels – The Collection of a European Gentleman”의 하이라이트로 출품되어, 650만~1,100만 스위스 프랑 추정가를 훌쩍 넘어선 1,584만 5,000 스위스 프랑(당시 약 1,750만 달러)에 낙찰되며 연간 주얼리 경매 최고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는 단지 다이아몬드의 캐럿 수나 품질 때문이 아니라, 까르띠에가 플래티넘 세팅을 통해 완성한 벨 에포크 보석 디자인의 정점, 드비어스와 연결된 조엘 가문의 사회·경제적 위상, 그리고 20세기 이후 거의 사라진 수공 장인 기술이 하나의 객체에 집약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브로치가 이후 인도 왕공과 무굴 귀족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Maharajas & Mughal Magnificence’ 경매에서도 다시 한 번 최고가의 제품으로 기록되며, 서로 다른 문화권의 왕실 서사를 모두 관통하는 상징적 작품임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자본, 유럽 벨 에포크의 사교 문화, 인도 마하라자 컬렉션을 아우르며 이동한 이력은, 까르띠에 보석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세계 권력 구조와 취향의 이동을 기록하는 ‘이동하는 아카이브’ 임을 보여준다. 결국 벨 에포크 다이아몬드 데방-드-코르사주 브로치의 가격은 까르띠에라는 이름값에 더해, 한 시대의 기술·자본·제국주의·미학이 응축된 “사라진 세계를 손에 쥐는 감각”에 지불된 대가라고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