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보는 까르띠에 part 2
까르띠에(Cartier)의 상징적 모티프 중 하나인 팬더(Panther)는 단순한 동물 이미지가 아니라, 20세기 문화사의 균열과 미적 혁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상징적 코드다. 그 상징성의 절정이 2010년 소더비(Sotheby’s) 런던에서 약 450만 파운드(약 700만 달러)에 낙찰된 윈저 공작부인 월리스 심프슨(Wallis Simpson)의 팬더 브레이슬릿이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영국 왕실·유럽 사교계·여성 주체성·장식예술의 긴 역사를 한 점의 오브제로 응축한 사례로 평가된다.
팬더 브레이슬릿의 상징성은 1936년 에드워드 8세(Edward VIII)가 남긴 역사적 결정에서 출발한다. 그는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 역사상 전례 없는 왕위 포기(abdication)를 선택했다. 이 사건은 영국 왕실의 권력 구조와 사회적 관습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이었고, 전 세계 언론은 이를 “사랑이 왕관을 이긴 사건”으로 기록했다. 이후 두 사람은 ‘윈저 공작·공작부인(Duke and Duchess of Windsor)’으로 불리며 유럽 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심프슨이 소장한 까르띠에의 팬더 주얼리는 이들의 비범한 서사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오브제로 받아들여졌고, 그 안에는 사랑·권력·파격이라는 시대적 상징이 겹겹이 축적되었다.
팬더 모티프를 까르띠에의 핵심 아이콘으로 확립한 인물은 아티스틱 디렉터 잔 투생(Jeanne Toussaint)이었다. 그녀는 코코 샤넬, 피카소, 콕토 등과 교류하며 파리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던 인물로, 독립적이고 강렬한 성격 때문에 “라 파통(La Panthère, 암컷 팬더)”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1914년 까르띠에는 첫 팬더 작품을 선보였고, 1933년 투생이 크리에이티브 책임자가 되면서 팬더는 메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팬더는 여성의 권력과 우아함, 자유와 자율성을 상징하는 비주얼 코드로 발전했고, 오늘날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까르띠에의 팬더 주얼리를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52년에 제작된 팬더 브레이슬릿은 까르띠에의 기술적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닉스(onyx)와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팬더의 점무늬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에메랄드(emerald)를 눈으로 세팅해 살아 있는 동물의 시선을 구현했다. 팬더가 몸을 낮추고 노려보는 포즈는 평면적 장식이 아니라 조각적 입체감을 강조하며, 내부 금속 구조에 적용된 힌지와 스프링 기법은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팬더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즉, 이 브레이슬릿은 ‘동물 모티프를 묘사한 장신구’가 아니라, 동물의 생명력·긴장감·아우라를 금속과 보석으로 재현한 일종의 조각적 구조물이다. 이 시기의 팬더 작품들은 까르띠에가 주얼리를 예술·조각·패션·신화적 이미지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팬더 브레이슬릿이 700만 달러라는 기록적 가격에 도달한 이유는 단순히 사용된 보석이나 장식적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20세기 문화사와 왕실 정치, 여성의 주체성, 까르띠에의 미학적 혁신이 층층이 겹쳐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레이어가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왕위를 버린 사랑”이라는,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월리스 심프슨을 선택한 순간부터 이들의 삶은 로맨스와 스캔들, 권력과 희생이 뒤엉킨 하나의 현대 신화가 되었고, 팬더 브레이슬릿은 그 서사를 손목 위에 고정한 상징적 오브제로 기능해 왔다.
여기에 더해, 까르띠에의 전설적인 아티스틱 디렉터 잔 투생이 구축한 팬더 미학의 정점이라는 점은 작품의 위상을 한층 더 높였다. 투생이 확립한 팬더는 단순한 모티프가 아니라 메종 자체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녀가 직접 관여해 제작한 작품들은 그 희소성만으로도 시장에서 압도적 상징성을 지닌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팬더 브레이슬릿은 단순히 심프슨의 개인적 취향을 넘어, 투생이 정의한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성’이라는 시각적 언어가 구현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월리스 심프슨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문화적 힘은 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그녀는 20세기 패션의 상징이자 유럽 사교계의 규범을 재정의한 인물로, 그녀가 사용했던 까르띠에 주얼리는 언제나 역할·정치·도덕·스타일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해석되었다. 심프슨의 팬더 브레이슬릿은 특히 유럽 상류 사회의 권력 네트워크를 반영하는 오브제로 기능했는데, 불문율과 사회적 기준, 왕실 전통 같은 보이지 않는 구조들이 어떻게 한 여성과 한 사랑을 중심으로 재배치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팬더가 지닌 문화적 의미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팬더는 잔 투생의 강인한 개성과도 닮아 있었지만, 동시에 20세기 중반에 떠오르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의 은유이기도 했다. 투생이 구축한 팬더 이미지에는 날카로운 우아함, 고독 속의 자율성,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내재해 있었고, 이는 당시 여성들에게 강렬한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팬더 모티프의 주얼리는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새로운 여성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혁신적 장식예술로 받아들여졌다.
팬더는 시간이 흐르며 여성의 권력, 우아함, 자유, 자기 결정권을 상징하는 하나의 비주얼 코드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많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팬더 주얼리를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팬더 컬렉션 중에서도 팬더 시계가 오직 여성용으로만 제작된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는 팬더라는 모티프가 애초 월리스 심프슨과 잔 투생이라는 두 여성의 미적 교류와 시대정신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며, 이 작품들이 여성의 삶과 감각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팬더는 결국 ‘여성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규정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메종의 상징이 되었고, 그 문화적 의미는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층위들이 한 점의 브레이슬릿 안에서 만나며, 팬더 브레이슬릿은 더 이상 단순한 보석이 아닌 ‘역사가 집약된 조각적 오브제’로 변모한다. 경매 직후 BBC가 이 작품을 두고 “역사적 드라마가 보석 형태로 고정된 상징”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텔레그래프(The Telegraph) 역시 이 브레이슬릿을 “20세기 왕실 스캔들의 가장 아름다운 잔재”라고 묘사했는데, 이 평가 속에는 단순한 주얼리 이상의 문화적 무게가 담겨 있다.
결국 팬더 브레이슬릿의 가치는 재료도 재료지만, 제품을 감싸고 있는 서사다. 그 안에는 사랑을 위한 왕위 포기라는 충격적 사건, 여성 예술가 잔 투생의 미학적 비전, 심프슨이라는 인물의 문화적 영향력, 그리고 시대가 요구한 새로운 여성상까지 모두 한 점의 보석 안에 봉인되어 있다. 이 복합적 레이어가 바로 팬더 브레이슬릿이 경매장에서 유례없는 가격을 기록할 수 있었던 가장 본질적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