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2장 : 루이비통 재단 전시 (5)

모로조프 컬렉션 The Morozov Collection _ Part1

by Diana H

이번에 소개할 전시는 루이비통 재단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질문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재단이 그간 기획해 온 전시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면, 특정 작가의 회고전이든 동시대 작가를 소개하는 오픈 스페이스 프로그램 (Open Space Program)이든, 언제나 하나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을 전시해야 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서술이 예술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와 문화의 흐름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2016년 시츄킨 컬렉션《Shchukin Collection》 이후 2021년 모로조프 컬렉션《The Morozov Collection》을 선보인 결정은, 루이비통 재단이 ‘컬렉터 전시’를 단발적인 기획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재단이 주목하는 것은 한 번의 취향이나 개인적 일화가 아니라, 반복된 선택이 만들어낸 구조다. 이 전시는 단일 작가의 회고전과 대등한 무게로,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하나의 미술사적 서사로 축적되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미술사의 주체를 작가나 제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작품을 선택하고 지지했던 복수의 개인과 그 판단의 연속성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71HXm9lK7DL._AC_UF894,1000_QL80_.jpg The Morozov Collection Poster (출처: Amazon UK)


모로조프 컬렉션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가장 설득력 있게 응답하는 사례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산업 자본가 가문에서 성장한 미하일과 이반 모로조프 형제가 프랑스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미술사적 사건이라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국가 미술관의 전략도, 제국 차원의 문화 정책도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성향과 판단을 지닌 두 형제가 각자의 방식으로 축적해 온 문화적 향유이자 선택의 총합이었다.


이 점에서 모로조프 컬렉션은 한 명의 천재적 컬렉터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기보다, 형제라는 복수의 주체가 만들어낸 컬렉팅의 밀도를 보여준다. 형 미하일 모로조프는 보다 감각적이고 동시대적인 선택을 통해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작품들을 빠르게 수용했고, 동생 이반 모로조프는 그 선택을 이어받아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아래 장기적인 안목으로 컬렉션을 확장했다. 이 컬렉션은 어느 한 사람의 취향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히려 서로 다른 판단이 축적되며 하나의 미술사적 논리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The Morozov Brothers. Story of a Russian Collection (DVD trailer) (출처: YouTube)


이 컬렉션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작품의 질이나 양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리적·문화적 맥락의 전복에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급진적인 회화들이 파리를 벗어나 러시아 모스크바의 개인 저택들에 나뉘어 걸렸다는 사실은, 근대미술의 이동 경로가 결코 단선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프랑스 내부에서도 세잔, 고갱, 마티스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었고, 제도권 미술관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이전의 시기였다. 그런 작품들이 국경을 넘어 개인 컬렉터들의 공간에 안착했다는 점은, 근대미술의 정전화가 제도 이전에 개인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루이비통 재단이 이 전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전시는 ‘프랑스 미술의 위대함’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 근대미술이 어떻게 개인의 판단을 통해 세계화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컬렉터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미술사의 방향에 실질적으로 개입한 행위자로 자리 잡는다.


147484.png The Morozov Collection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모로조프 형제는 단순히 재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컬렉팅을 할 수 있었던 인물들이 아니다. 물론 산업 자본을 통해 형성된 경제적 기반은 필수 조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컬렉션의 밀도와 설득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결정적인 요소는 지식적·문화적 인프라였다. 이들은 파리를 일시적인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적 판단을 점검하고 갱신하는 문화적 기준점으로 인식했다. 반복적인 체류, 프랑스어 구사, 유럽 사교계와의 접점은 그들을 ‘외부의 부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국제적 컬렉터 집단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특히 이반 모로조프는 작품을 선택할 때 단기적 명성이나 장식성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한 점의 걸작보다 작가의 사유가 어떻게 이동하고 변화하는가에 주목했다. 아직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고, 단발적인 소유가 아니라 장기적인 후원을 통해 시간과 신뢰를 함께 투자했다. 풍경, 정물, 인물이라는 장르의 구분은 이 형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이 작가는 무엇을 질문하고 있으며, 그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는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미술관 컬렉션의 논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말하자면 모로조프 형제는 제도 이전에 이미 미술관적 사고를 개인의 컬렉션에 적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photograph-of-paul-durand-ruel_wide-cdf99816d49d1c4c7e47b0a5e45a248e8dce9118-1500x843.jpg Paul Durand-Ruel | Impressionist, Post-Impressionist, Patron (출처: Britannica)


이 모든 선택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작가와 컬렉터 사이에서 미술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조율하던 딜러라는 존재가 있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파리는 오늘날과 같은 갤러리 시스템이 완성되기 이전의 시기였지만, 바로 그만큼 소수의 딜러들이 시장과 미술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단순히 작품을 중개하는 상인이 아니라, 작가의 가능성을 먼저 판단하고 그 판단을 신뢰할 만한 컬렉터에게 연결하는 해석자이자 전략가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폴 뒤랑 뤼엘 (Paul Durand-Ruel) 이다. 뒤랑 뤼엘은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리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살롱 제도 바깥에서 이들을 지속적으로 전시·판매하며 인상주의를 국제 시장으로 밀어 올린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가 단기적 판매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가를 개별 작품 단위로 취급하기보다 작가 단위로 투자했고, 파리뿐 아니라 런던과 뉴욕으로 시장을 확장함으로써 인상주의를 지역적 실험이 아닌 국제적 시장의 언어로 전환시켰다.


arter 3.png The Morozov Collection in Fondation Louis Vuitton (출처: Arter)


모로조프 형제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비교적 안정된 맥락 속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스템 덕분이었다. 기록상 모로조프 형제와 모네 사이에 지속적인 서신 교류나 직접적인 의뢰 관계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미술 네트워크 안에 있었고, 그 중심에는 뒤랑 뤼엘이 있었다. 이 관계의 핵심은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딜러를 매개로 한 미감의 신뢰였다. 뒤랑 뤼엘은 모네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적으로 남을 작가로 판단하고 있었고, 모로조프 형제는 그 판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재력과 교양, 국제적 감각을 갖춘 컬렉터였다. 이 지점에서 컬렉팅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신뢰의 문제로 이동한다. 반면 암브루아즈 볼라르는 전혀 다른 성격의 딜러였다. 그는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하기보다, 당대에 가장 이해받지 못하고 논쟁적이었던 작가들에게 집요하게 매달린 인물이었다. 볼라르는 세잔, 고갱, 반 고흐와 같은 작가들을 다뤘고, 이들의 형식적 급진성과 미술사적 잠재력에 확신을 가졌다. 상업적 성공보다, 이 작가들이 만들어낼 전환 자체에 집착한 딜러였다고 할 수 있다.


icons-of-modern-art-the (1).jpg The Morozov Collection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모로조프 형제가 세잔과 고갱의 작품을 비교적 이른 시점에, 그것도 단편적인 한 점이 아니라 연작과 시기별 작품 단위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볼라르가 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유하고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갱의 경우, 타히티 체류로 인해 작가와의 직접 만남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로조프 형제는 그의 작품에서 문명 비판, 원시성, 색채의 해방이라는 미학적 급진성을 정확히 읽어냈다. 이는 작가와의 직접 소통이 아니라, 딜러가 제공한 맥락과 판단을 통해 가능해진 이해였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작가를 몰랐지만 작품을 이해한 컬렉터였고, 그 이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볼라르였다.


arter.png The Morozov Collection in Fondation Louis Vuitton (출처: Arter)


이 지점에서 모로조프 컬렉션은 단순한 개인 취향의 집합을 넘어선다. 그것은 딜러가 발견한 가치, 컬렉터가 지지한 판단, 그리고 작가가 밀어붙인 실험이 함께 만든 구조다. 그래서 루이비통 재단이 이 컬렉션을 다시 소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전시는 분명히 말한다. 위대한 예술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가, 딜러, 컬렉터가 같은 방향을 볼 때 비로소 미술사는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언제나, 누군가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모로조프 형제의 이야기가 지금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The Morozov Collection》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는가. 모로조프 형제는 정답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감지했고, 서로 다른 판단을 통해 그 변화를 축적했다. 그렇기에 이 컬렉션은 과거의 명작전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선택의 철학’으로 읽힌다. 이 점에서 루이비통 재단이 모로조프 형제의 컬렉션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미술사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곧 브랜드의 문화 선언이다. 럭셔리란 이미 검증된 것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치를 복수의 판단으로 지지하고 축적해 나가는 능력이라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이 형제의 선택이 가장 농축된 작품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화려한 컬렉션의 이면에서, 그들의 판단을 지지하고 방향을 함께 만들어간 인물들은 누구였을까.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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