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2장 : 루이비통 재단 전시 (6)

모로조프 컬렉션 The Morozov Collection _ Part2

by Diana H

이 컬렉션이 특별한 근본적인 이유는 지리적·문화적 맥락의 전복에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급진적인 회화들이 파리를 벗어나 러시아 모스크바의 개인 저택들에 나뉘어 걸렸다는 사실은, 근대미술의 이동 경로가 결코 단선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프랑스 내부에서도 세잔, 고갱, 마티스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었고, 제도권 미술관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이전의 시기였다. 그런 작품들이 국경을 넘어 개인 컬렉터들의 공간에 안착했다는 점은, 근대미술의 정전화가 제도 이전에 개인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루이비통 재단이 이 전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전시는 프랑스 미술의 위대함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프랑스 근대미술이 어떻게 개인의 판단을 통해 세계화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컬렉터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미술사의 방향에 실질적으로 개입한 행위자로 자리 잡는다.


arter 4.png The Morozov Collection in Fondation Louis Vuitton (출처: Arter)


이제 시선을 작품으로 옮길 차례다. 앞선 장에서 살펴본 모로조프 형제의 컬렉팅은 하나의 철학이자 구조였다. 그러나 그 철학이 실질적인 힘을 갖는 순간은, 언제나 특정한 그림 앞에서였다. 이 장에서는 이반과 미하일 모로조프 형제의 선택이 가장 농축된 작품들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었는지를 살펴본다. 여기 소개되는 작품들은 단순한 대표작의 목록이 아니다. 이 전시에서 학계와 언론이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모로조프 컬렉션이 ‘근대미술사의 요약본’으로 불리게 만든 결정적 장면들이다. 동시에 이 작품들은, 이 형제가 이미 미술사를 읽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VanGogh_Morozov.jpg The Morozov Collection. Icons of Modern Art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이 전시가 언론과 학계에서 반복적으로 “근대미술사의 요약본”으로 불린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시의 중심에는 세잔이 놓여 있었다. Mont Sainte-Victoire 연작과 정물화, 그리고 암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은 거의 모든 전시 리뷰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었다. 그것은 세잔이 후기인상주의 화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회화를 감각의 기록에서 구조적 사고의 장으로 전환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소개된 모네의 후기 Water Lilies 연작은 자연의 재현을 넘어, 회화가 시간과 감각의 축적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반 고흐의 The Red Vineyard와 Prisoners Exercising은 회화에 감정과 주관을 전면적으로 끌어들인 결정적 순간을 환기시켰고, 고갱의 타히티 시기 작품은 근대의 시선이 마주한 타자성과 문명 비판의 균열을 드러냈다. 여기에 마티스의 대형 회화들이 더해지며, 이 전시는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전시가 아니라, 근대미술이 무엇을 질문하기 시작했는가를 한 번에 조망하게 만든다. 러시아 작가인 브루벨, 레핀, 세로프의 작품이 프랑스 근대미술과 병치된 점 또한, 이 전시를 한 국가의 미술사가 아니라 유럽 근대미술 전체의 지형도로 읽히게 했다.


6149c50b85600a743c5e6007.jpg 세잔의 Mont Sainte-Victoire 작품 (출처: Russia Beyond)


세잔의 Mont Sainte-Victoire 연작은 풍경화라기보다 구조 실험에 가깝다. 산은 더 이상 자연의 대상이 아니라, 회화를 구성하는 질서의 문제로 다뤄진다. 이반 모로조프는 세잔을 하나의 스타일이나 장르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세잔은 회화가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훗날 입체주의와 현대회화의 출발점으로 세잔이 자리 잡게 되는 논리는, 이미 이 컬렉션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


85.jpg Pablo Picasso — Portrait of Ambroise Vollard, 1910 (출처: Pablo Picasso)


Portrait of Ambroise Vollard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 초상은 한 인물의 얼굴을 재현하기보다, 회화적 시선의 긴장을 드러낸다. 형태는 고정되지 않고, 색면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모로조프 형제가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세잔을 완성된 거장이 아니라 실험의 한가운데 있는 작가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모로조프 컬렉션에 포함된 모네는 초기 인상주의가 아니다.


075 morozov claude monet.jpg Morozov collection의 Water Lilies (출처: Artistes-aac-chelles.fr)


후기 Water Lilies 연작에서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의 축적이 된다. 붓질은 사물을 묘사하기보다 시선의 지속을 기록한다. 이 선택은 모네를 장식적 화가가 아니라, 회화의 시간성을 확장한 작가로 재위치시킨다.


lg-signature-magazine-art-culture-vangogh-image-2-w.jpg Vincent Van Gogh의 'Red Vineyards at Arles' (출처: LG SIGNATURE)


반 고흐의 The Red Vineyard는 신화 이전의 반 고흐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색채는 감정의 폭발이지만, 동시에 분명한 구조를 가진다. 미하일 모로조프는 이 그림에서 비극적 서사를 소비하지 않았다. 그는 회화가 감정을 형식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읽어냈다.


prisoners-exercising-prisoners-round-1890.jpg!Large.jpg Vincent van Gogh's Prisoners Exercising (출처: Wiki Art)


Prisoners Exercising 역시 개인적 고통을 넘어, 근대적 인간 조건을 구조적으로 사유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원형 안에서 반복되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고립과 규율이라는 근대의 문제를 은유한다.


RF 1961 6.jpg Paul Gauguin의 Arearea (Joyfulness) (출처: 오르세 미술관)


고갱의 Arearea (Joyfulness)는 유럽 중심 미술의 균열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색채는 설명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고, 문명 비판과 타자성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모로조프 형제는 이 그림을 이국적 이미지가 아니라, 근대성 자체를 질문하는 회화로 이해했다.


morozov-tryptique-marocain-matisse.jpg "Moroccan Triptych" from The Morozov Collection at Fondation Louis Vuitton (출처: DailyArt Magazine)


마티스의 Moroccan Triptych는 개인 저택을 위해 제작된 대형 작품이다. 이는 회화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환경으로 인식한 선택이었다. 색채는 장식이 아니라 공간을 조직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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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 with Blue Tablecloth 역시 정물화의 안정성을 거부하며, 색과 형태가 긴장 속에서 균형을 찾는다. 이 작품들은 야수파가 단순한 색채의 해방이 아니라, 회화 질서의 재편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스타일도, 국적도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태도다. 모로조프 형제는 이미 검증된 명성을 소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작품들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시간으로 지지했다. 이 그림들은 훗날 미술사가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게 될 근대미술의 핵심 장면들이지만, 선택의 순간에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모로조프 컬렉션이 오늘날까지 특별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컬렉션은 미술사적 정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점을 감지했기 때문에 형성되었다. 미하일의 직관과 이반의 구조적 판단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지만, 그 차이 자체가 하나의 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밀도는, 오늘날 우리가 근대미술의 흐름이라 부르는 서사와 정확히 겹쳐진다. 모로조프 형제의 선택이 지금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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