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eny) 는 흔히 ‘색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작가’로 기억된다. 수영장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집, 강렬한 하늘색과 분홍빛 벽, 평면적이면서도 명확한 형태. 그러나 그의 색채는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을 해석하고 시간을 조직하는 시각적 언어다. 이 점에서 그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까지,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장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그는 산업 도시 특유의 절제된 풍경 속에서 성장했다. 이후 런던의 Royal College of Art에서 수학하며 1960년대 영국 팝아트 세대의 중심에 섰지만, 소비문화의 아이러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어떻게 세계를 보는가. 이 질문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원근법에 대한 비판, 사진 콜라주 실험, 다중 시점의 공간 구성, 그리고 디지털 드로잉까지 — 그의 작업은 모두 ‘보는 방식’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1967년 《A Bigger Splash》에서 인물은 사라지고 물보라의 흔적만이 남는다. 사건은 이미 지나갔고, 화면에는 정지된 시간의 밀도만이 응축되어 있다. 이는 사진과 다른 방식으로 순간을 다루는 회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1970년대 ‘조이너(joiner)’ 작업은 단일 소실점의 공간을 해체하며 복수의 시점과 시간을 병치한다. 2000년대 요크셔 풍경 연작은 여러 캔버스를 연결해 관람자의 시선을 이동하게 만들며 공간을 체험의 과정으로 전환한다. 이후 아이패드를 활용한 드로잉에 이르러 그는 기술과 회화의 경계를 무화시켰다. 매체는 달라졌지만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궤적을 집약적으로 조망한 전시가 파리의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열린 《David Hockney 25》(2021–2022)였다. 이 전시는 단순한 연대기적 회고가 아니라, 1955년부터 2020년대에 이르는 60여 년의 작업을 ‘보는 방식’이라는 주제로 재구성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노르망디에서 제작한 신작까지 포함함으로써, 호크니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작가임을 강조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렇다면 왜 루이비통 재단은 이 전시를 선택했는가.
루이비통 재단은 설립 이후 줄곧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사를 대규모로 재조명해 왔다. 마크 로스코, 모로조프 컬렉션, 쉬추킨 컬렉션과 같은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20세기 미술의 전환점을 현재적 맥락에서 다시 읽어내는 프로젝트였다. 재단은 동시대 작가를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미술사적 계보를 조직하는 기관으로 자리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크니는 자연스럽게 그 연장선 위에 놓인다. 그는 팝아트 이후 회화가 어떻게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인물이다. 회화라는 전통적 매체가 기술과 환경을 흡수하며 동시대적 언어로 갱신될 수 있음을 증명해 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재단이 미술사의 흐름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면, 호크니는 그 전략을 구현하기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재단 건축은 유리 패널과 곡선형 볼륨이 중첩된 유동적 구조를 지닌다. 하나의 시점으로 파악할 수 없는 다면적 공간은 관람자의 이동과 시각적 경험을 전제로 한다. 호크니의 작업 역시 단일 소실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중 시점, 파노라마적 구성, 몰입형 영상 작업은 건축의 구조와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실제로 《David Hockney 25》는 대형 다중 패널 회화와 360도 영상 설치를 통해 건물 전체를 하나의 확장된 화면처럼 활용했다. 이는 작품을 벽에 거는 전시가 아니라, 건축과 회화가 상호작용하며 완성되는 경험이었다. 재단의 공간은 호크니의 시각 실험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무대였다.
아트 마켓에서의 맥락 역시 간과할 수 없다. 2018년 뉴욕 Christie's에서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가 약 9,030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 최고가를 기록한 사건은 단순한 가격 갱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 매체가 확장되던 시대에도 회화가 여전히 미술 시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루이비통 재단은 공공적 문화 기관의 형식을 취하지만, 동시에 글로벌 컬렉터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결된 플랫폼이다. 호크니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미술사적 권위와 시장적 상징성이 만나는 지점을 전략적으로 점유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는 브랜드 재단이 예술적 정통성과 동시대적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무엇보다 호크니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작가다. 그는 1960년대 팝아트 세대의 중심에서 출발했지만, 80대에 이르러서도 아이패드로 작업을 지속하는 현재진행형의 실험가다. 재단의 관람객은 전통적 컬렉터층에만 머물지 않는다. 젊은 글로벌 관객과 디지털 세대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권위와 현재의 생동성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호크니는 바로 그 접점을 형성한다. 그는 역사적 인물이면서도 동시대적 감각을 잃지 않은 드문 사례다.
결국 이 전시는 단순히 한 거장의 작업을 집대성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루이비통 재단이 어떤 미술사를 선택하고, 어떤 동시대성을 지지하며, 어떤 문화적 위치를 점유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회화가 여전히 확장 가능한 매체이며, 전통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갱신될 수 있다는 믿음. 호크니는 그 믿음을 가장 안정적으로 시각화하는 작가다.
미술사적 정통성, 대중적 접근성, 그리고 시장적 상징성.
이 균형은 아무 작가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 전시는 브랜드 차원의 문화적 선언이기도 했다. 루이비통 재단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브랜드가 스스로를 문화 기관으로 위치시키는 장치다. 전통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갱신될 수 있고, 기술은 예술의 적이 아니며, 회화는 여전히 동시대의 언어로 작동한다는 메시지. 이는 단순한 미술 담론이 아니라, 19세기 장인적 제작에서 출발해 글로벌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된 브랜드의 자기 서사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David Hockney 25》는 한 거장의 성취를 정리하는 회고전이 아니라, 루이비통 재단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 담론의 무대가 바로 이 재단임을 보여주는 선언 말이다. 호크니가 남긴 유산은 눈부신 색채 그 자체가 아니라, 보는 행위에 대한 신뢰다. 세계는 여전히 인식될 가치가 있으며, 예술은 그 인식을 확장하는 도구라는 믿음.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동시대 미술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