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슬픈 변명
우리는 누군가가 완벽하지 않아서 싫어하지 않는다.
완벽한 척하는 그 오만함에 질리는 거다.
언젠가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고 머릿속이 번쩍했다. '맞아, 그런 사람 있어'하는 공감의 끄덕임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괜히 뜨끔한 마음도 들었던 탓이다.
[ 完璧 : 완전할 완, 옥 벽]
흠이 없는 옥. 즉 아무런 흠이 없는 뛰어난 것을 가리킴.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완벽이라는 말은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흠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기를 쓰고 절대 사소한 결점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모습을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그리고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부분은 마치 원래부터 없는 것인 양 감춰 버린다.
이들은 스스로가 '완벽주의자'여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대로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과한 욕심과 집착 때문이다. 결점을 가진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완벽한 허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허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완벽한'척'하려는 모습은 타인의 눈에 그저 '오만함'으로 비칠 뿐이다.
자학적인 완벽주의의 문제점은 자기 자신의 영역을 넘어 타인과 함께하는 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된다. 스스로에게조차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타인의 결점을 관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안에서부터 가득 차야 주변으로 흘러 넘칠 수 있기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그가 얼마나 흠이 없는지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알게 될 때다. 처음 사람을 사귈 때에는 외모나 배경에 끌릴 수 있지만, 정작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친근감을 갖게 되는 순간은 그 사람의 약간은 부족한 면이나 불우한 개인사를 알게 되었을 때가 아닌가. 사람은 자신과 닮은 불완전함에 은근한 동질감을 느낀다. 언제나 완벽할 것만 같은 연예인이 예능에서 허당끼 가득한 모습을 보이거나 공황장애,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 대중들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구나'하는 생각에 더 가깝게 느끼는 것도 같은 이치다.
결국 스스로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슬픈 마음에 대한 변명일 뿐일 수 있다. 실체 없는 완벽한 허상의 틀에 맞추려 스스로를 괴롭히기 전에 먼저 나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까지 사랑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