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 'Office Big Bang' 오피스 빅뱅
팬데믹 이후 노동자들의 대규모 이탈을 예견하며 ‘대사직 시대 The Great Resignation’라고 명명했던 앤서니 클로츠 Anthony Klotz 교수는 코로나19가 ‘일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감염병의 위협이 재택근무로의 이행을 본격적으로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되는 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 코로나19는 오피스 빅뱅을 수면 위에 떠오르게 한 결정적 계기이자,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축적된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시금석이다. 2023년, 오피스 빅뱅 트렌드는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동시에, 조직 문화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개인과 조직의 역할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ESG를 외치는 시점에서 재택근무의 보편화는 개인 성향에 따라 업무 능률 및 호율을 높일 수 있고, 오피스에 국한되지 않고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 전력 및 오피스 자원 소비 감소도 환경적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부하직원이 무얼 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마음이 편한 일부 기성세대와 하이브리드 근무를 맛본 밀레니얼, MZ세대 간의 입장 차는 과연 어떻게 좁혀질까.
미국에서도 ‘조용한 퇴사 quiet quitting’ 논란이 일고 있다. 조용한 퇴사란 “일은 충실히 하되,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사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평가나 경쟁과는 결별한다”는 직장관을 일컫는다. 조용한 퇴사 혹은 영혼 없는 근무에 대한 원인과 진단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성과자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일이 삶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통념의 거부”라는 해석도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직원에 대한 동기부여의 부족이자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이 빚어낸 조직 관리의 실패”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고가의 요가복으로 유명한 룰루레몬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룰루레몬은 온보딩 기간 동안 신입직원들에게 커리어와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하도록 장려한다. 룰루레몬의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인 직원이나 언젠가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는 것이 목표인 직원 모두가 각자의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동등하게 지원한다. 이 때문에 룰루레몬 신입직원의 90일 근속률과 입사 1년 차 직원의 업무 몰입도는 업계 평균의 2배 수준으로 올랐다. 룰루레몬은 신입직원의 온보딩만큼 퇴사자의 온보딩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튜디오나 체육관을 열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떠나는 수많은 직원들을 룰루레몬의 ‘앰배서더’로 만들고, 지역 룰루레몬 매장에 이들의 사업을 소개하는 사진이 전시된다. 이미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지만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이들의 성공에도 여전히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직장인 생애주기 관리는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ISO로서 퇴사자의 보안서약서를 받던 중, 문득 '보안서약을 하더라도, 내부 정보 발설을 과연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이 스쳤다. 퇴사자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불편하게 대하는 상사들이 있고, 퇴사자 또한 퇴사일까지 상사의 불편한 눈초리를 감수하다가 유명한 퇴사짤을 남기고 해방감을 느끼며 회사를 나갈 거다. 이런 측면에서 룰루레몬의 scheme은 퇴사자를 '적'으로 등지는 것이 아닌 '잠재적 지원군'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단순히 고연봉으로 이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게 붙잡은 인재는 누군가 연봉을 조금만 더 준다고 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앞으로는 조직 내 HR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직원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것을 넘어 구성원에게 조직의 가치를 전달하고 이해관계자인 직원을 설득하는 사내 커뮤니케이터로서 역할이 더욱 확장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조직 문화와 철학의 변화는 반드시 ‘KPI’의 개편과 연결돼야 한다. KPI란 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의 약자로, 주요 비즈니스 목표 대비 팀이나 조직의 진행 상태를 나타내는 정량적인 지표다. KPI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해야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문제는 오늘날 경영 환경과 소비트렌드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조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팀 간의 협력이 활성화되며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원들이 KPI 맞추기에 급급해서 전체적인 방향성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작년 말, KPI 달성 위한 증적자료를 벼락치기로 준비하면서, KPI 달성의 궁극적 목적 이행보다는 본질을 잃은 채 껍데기를 열심히 가다듬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서 올해는 KPI 지표 항목을 적기에 이행할 것을 다짐했었는데, 위 대목을 통해 방향성을 잃은 KPI 달성 목표의 현실을 일깨워줬다.
미국 리서치센터 ADP 연구소의 인력·성과 연구 책임자인 마커스 버킹엄 Marcus Buckingham은 “오늘날 대다수 대기업의 표준이 된 역량 모델, 피드백 도구, 경직된 커리어 경로는 일에 대한 직원의 수행을 판에 박힌 행동이나 태도로 바꿔놓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OKR’을 도입하는 회사들이 많다. 목표 및 핵심결과지표 Objective Key Result의 약자인 OKR은 조직적 차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를 추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목표 설정 프레임워크다. 반드시 OKR이 아니더라도 업무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은 조직의 향방을 결정하는 유인책이 된다는 점에서 오피스 빅뱅의 시대에 맞는 성과 측정 지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졌다.
마지막으로, 근무 형태가 다양해지고 노동시장이 격변하는 오피스 빅뱅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구글의 생산성을 총괄 담당하는 로라 메이 마틴 Laura May Martin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필요한 시대라고 지적한다. 어디에서·언제·어떻게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커리어 액셀러레이터이자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의 저자인 김나이 씨는 “직장에서 최대한 가늘고 길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마주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시도하고 업으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도 중요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용기’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Born picky, Cherry-sumers 체리슈머
LG U+가 론칭한 구독 서비스 플랫폼 ‘유독’은 ‘선택제한·요금부담·해지불편’이 없음을 내세우며 소비자가 언제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원하는 서비스만 골라서 구독할 수 있고, 매월 다른 서비스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특장점으로 꼽았다. SKT의 ‘T우주’도 기본 혜택 위에 소비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구독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였다. 이에 론칭 10개월 만에 이용자 120만 명을 달성하며 큰 호응을 얻자, SKT는 ‘공유하기’와 ‘선물하기’와 같은 기능을 추가하여 편의성을 더욱 강화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 두 서비스는 이전에 비해 해지하기 쉽게 제도를 바꾸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과거 통신사들이 “가입은 쉽지만 탈퇴는 어렵게” 해온 관행에서 탈피해 새로운 고객 트렌드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행 업계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까지 여행 위약금은 소비자가 예약을 취소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당연한 대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언제든 취소가 가능한 계약’을 원하는 체리슈머의 등장에 관련 업계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변화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여행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한 재확산 위험에 망설이고 있는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체리슈머의 주된 세대인 MZ세대는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로 알려져 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이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들 하는데, 정작 성인이 되고 보니 내 집 한 칸 마련하기도 벅차다. 동시에 어릴 적부터 고급 경험을 많이 해온 터라 취향의 수준은 높다. 이처럼 욕망은 넘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삶을 사는 이들이 치밀한 재무 관리에 몰두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흔히 MZ 소비자의 소비 성향을 ‘욜로’나 ‘플렉스’ 등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키워드로만 이들을 바라보면 오해하기 쉽다. 이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즐긴다. 자기 관리에 능숙한 세대답게 지출 관리에도 밝다. 30대 인기 재테크 유튜버 전인구 씨는 한 인터뷰에서 “흔히 ‘짠테크’ 하면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기본으로 꼽는데, 나는 밖에서 간단히 먹는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시간과 에너지로 일을 한다. 난 시간을 절약하는 짠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소비자의 과도한 무지출 챌린지를 비판하며 ‘무지성 챌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일 정도다. ‘회사 탕비실 간식으로 끼니 때우기’ 같은 몰지각한 무지출 행동이 많아지면서 등장한 신조어다. 절약도 좋지만 그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소비자 윤리’다. 소비자는 자신의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앞서, 계약을 준수하고 시장 질서를 준수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 인덱스 관계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지인과 연락하던 시절은 가고,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시대가 왔다. 수단이 본질을 바꾼다. 소통의 매체가 진화하면서 관계 맺기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Thorough Enjoyment: 'Digging Momentum' 디깅모멘텀
큰 대중 mass 시장보다 미세한 micro 시장을 노려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날처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불경기가 심해진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매출을 확보하려면, 대중의 인지도나 호의적 태도보다 ‘구매전환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구매를 요모조모 따지며 고민하는 시장에서는 소수의 고객에 집중해서 구매전환율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처럼 특정한 타깃 소비자의 수요에 집중해 고객으로 하여금 ‘나에게 더 적합한 제품’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를 ‘마이크로 세그먼테이션 micro-segmentation’이라고 한다. 본래 세그먼테이션은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소비자를 일정한 기준으로 구획하는 일을 뜻했다. 과거에는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가장 다수가 되는 평균적인 군집을 선정하는 일이 주된 과업이었다면(‘평균 실종’ 참조), 이제는 그 소비자군을 되도록 세밀하게 나눠야 한다. 마이크로 세그먼테이션은 소비자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와 상황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수건 브랜드 ‘더타월’은 남성용 수건과 여성용 수건을 나눠서 제작한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 여성은 천천히 부드럽게 톡톡 두드리는 반면, 남성은 거침없이 쓱쓱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해 소재의 부드러움, 꼬임의 횟수 등을 다르게 하여 제품군을 구분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아베다는 머리를 감기 전에 사용하는 빗과 감은 후에 사용하는 빗을 각각 생산한다. 마른 상태에서는 ‘스칼프 브러시’로 두피의 이물질을 털어내고, 샴푸 후에는 ‘우든 패들 브러시’로 머리카락의 매끄러움과 윤기를 살려줄 수 있도록 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효율을 추구하게 된다. 적은 투입으로 많은 성과를 거둬야 하는 기업과 조직경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상품 개발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최소한의 변화를 통해 최대한의 성과를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소비자 정보가 숨김없이 공개되는 현재의 시장에서 이미 성공한 제품들을 벤치마킹하여 조금 더 개선된 제품을 내놓기를 반복하다 보면, 비용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카피한 제품, 안주하는 회사”라는 오명을 쓰기 마련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따라 하는 관성이 고착화될수록 그 기업의 가치는 타이타닉처럼 서서히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말 재미있게 몰입되어 읽었던 <트렌트 코리아 2023>.
런던에서 심신 여유로운 삶이 만족스럽다 보니, 치열하고 몰리며 그저 빠르게 변하기만 하는 한국의 삶이란 내게는 새장처럼 틀에 가둬지고, 각 개인 고유의 개성보다는 모두가 똑같이 복제되는 대량생산 공장과 같은 인식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는, 한국의 변화무쌍한 트렌드가 오히려 나 자신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정신 똑디 차리며 더 발전할 수 있는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추후 한국으로 완전 복귀 시, 어떤 기업의 어떤 부서에서 어떤 직무를 하며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꽤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 열심히 작성한 1편이 영문도 모르게 삭제되었다. 정말 충격적…. 마음 아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