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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osaur Feb 14. 2020

04 |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 - 1

노구치 마사코

존재감 넘치는 그녀들의 생각과 관계의 방식


"왜 나이 같은 걸 세는 거야? 그건 잘못한 일, 후회하는 일을 세는 것과 똑같아.
진짜 세어야 할 건 따로 있어.
바로 내년 바캉스까지 남은 날짜야!"


| 여자의 아름다움은 평생 간다

마담 콘시니는 만날 때마다 항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갈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매일 아침 예쁜 란제리 고르는 것을 시작으로 옷과 구두를 고르고 머리 손질을 한 후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른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럼에도 매일 정갈한 단장을 잊지 않는 긴장감이 그녀를 할머니가 아니라 여성으로 존재하게 한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대해 말한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경제적으로 풍족한 일상과 자식과 손주 자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람회 주인공이었던 이탈리아 화가와 그 시대 영국 문학과 시에 대해, 올해 바캉스는 어디로 갈지에 대해.


| 나이보다 먼저 세어야 할 것

프랑스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다른 사람의 나이뿐 아니라 자신의 나이조차 잘 세지 않는다. 저 사람은 00살이고 나는 00살이니까, 하고 나이로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판단하는 일이 없다.


 "이름 뒤에 붙어 있는 (49)는 무슨 의미야?"

언젠가 남편이 내게 물었다. 텔레비전과 잡지, 신문 등에서 봤다고 하는데 신기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나이잖아!"

내가 대답하자 "그렇군. 미국에서는 '연봉 10만 달러'처럼 돈이 중요한 숫자라고 하던데 일본에서는 그게 나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약간 기분이 상해 프랑스에서는 뭐가 중요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음, 글쎄. 숫자 이외의 무엇이겠지."라고 대답했다.


| 어른만이 느끼는 즐거움

일기 예보든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회자든 프랑스 미디어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유는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프랑스 여성들은 어떤 여성상을 목표로 할까? 알렉산드라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글쎄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평소에 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굳이 몇 가지 얘기해보자면, 대화하는 게 즐겁다,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기쁠 것 같아요. 품위가 있다거나 머리가 좋다거나 매력적이라는 말도 좋고요."


아름다움은 분명 내면에서 배어 나온다. 젊음은 눈 깜빡할 새 사라지지만 여자의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파리에서는 50대, 60대, 70대 혹은 그 이상의 멋진 마담들이 탐스러운 꽃다발 같은 원숙미를 뽐낸다. 품위 있는 아름다움은 은은한 빛 그 자체다. 그녀들에게 영향을 받아 나도 지금은 나이 드는 것이 기분 좋다.


| 매혹적인 개인주의자

원래 프랑스인은 토론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달라도 개의치 않는 면이 있긴 하다. 그래서인지 "노."라고 말하는 것에도 듣는 것에도 익숙하다.

'본심과 다른 말이나 행동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실례다.' 잡지에서 본 프랑스 심리학자의 말이다.

"거절하는 말을 듣는 데 거부감은 없어?" 친구인 사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전혀. 종종 듣는 걸. 지금까지 일하면서 거절을 수십 번이나 당했고."

"일이야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으니 거부감이 크게 없을 수도 있지. 사적으로는 어때?"

"마찬가지야. 모든 사람에게 호감 받을 필요는 없잖아. 거절하거나 거절당하는 것 모두 일반적이라고 생각해."


| 카롤린의 독서 여행

책을 읽으러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사람은 카롤린이다. 그녀는 혼자 고급 호텔에 묵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의 주된 목적이 호텔 방에서 책을 읽는 것인 만큼 호텔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위기 좋고 안락한 곳, 조용하고 여성 혼자 묵어도 안전한 곳을 고른다. 카롤린의 취향을 잘 알지만 굳이 런던까지 가서 유명한 맛집도 가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은 채 호텔 방에서 룸서비스나 포장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며 책만 읽는다고?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롤린의 얘기를 듣다가 보니 어느새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


여행은 상상에서 시작된다. 그날 밤, 여행 가이드북을 사고 인터넷으로 여행지와 묵고 싶은 호텔을 찾아봤다. 그러니 마음은 어느덧 여행지에 가 있다.


| 음식은 나눠먹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남편의 요리가 맛있어 보여 조금 맛보려 하자 남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라고는 했지만 프랑스인 특유의 차가운 단면을 보았다고 할까? 반대로 내가 주문한 요리를 남편에게 맛 보이고 싶을 때도 가끔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맛보라고 권해도 남편은 단칼에 거절한다.


파리에 살면서 요리를 나누어 먹지 않는 것이 매너나 까칠함과는 다른 문제라는 걸 배운 덕분이다. 프랑스인들의 행동과 그 배후의 사고는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먹는 것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요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 음식이 아무리 맛있을지라도.' 프랑스인들의 개인주의는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여실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을 절대 부러워하지 않고 자기 선택에 집중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감탄할 때가 있다.


프랑스식 개인주의는 레스토랑 요리 선택에 한하지 않고 인생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자기가 좋아서 고른 가방을 들고 다니면 다른 사람이 어떤 가방을 갖고 있든 개의치 않는다. 그걸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가방을 멋지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게 인정하는 마음에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거나 우위를 매기려는 심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먼저 생각하면 심신이 피로해진다. '선택을 할 때는 순간의 직감에 따른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 그것이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자신밖에 모르고 제멋대로인 이기주의자와 차원이 다른 궁극의 개인주의다.


 | 함부로 흙 묻힌 발을 들이지 마라

조언은 때론 참 난감하다. 조언을 하는 사람은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을 갖고 뿌듯해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조언자의 가치관이나 사고를 멋대로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조언이 아니라 참견이 된다.

내가 아는 프랑스 여성은 그런 면에서 매우 쿨하다. 나는 나, 너는 너 경계가 아주 명확하여 함부로 상대의 세계에 자신의 흙 묻힌 발을 들이지 않는다. 물론 상대가 자기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도 금지다. 무엇보다 이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 아무에게나 내 행복을 알리지 않는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부나 행복은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편이다. 프랑스어로 '디스크레'라는 단어가 있다. '절제하다, 조신하다.'라는 의미인데 여성에게 이 말을 써서 '엘 레 디스크레트.'라고 하면 조신하고 참하다는 뉘앙스다. 자기가 얼마나 유능하고 잘 나가는지, 얼마나 풍족한지 소리 높여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서 깊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행복한 가정, 보람 있는 일에 더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안소피,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지만 화려하기보다는 조신하고 참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여자. 자기가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 있는지 절대 소리 높여 드러내지 않는다.


| 관계, 가만히 두는 연습

어른의 친구 관계에는 긴밀하기보다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편안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너무 깊이 파고들면 삐걱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 살고 있는 일본 여성 아야 씨는 이네스를 둘도 없는 친구, 속내를 내보일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야 씨는 이네스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이네스가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야 씨의 기분도 이해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니 함께 축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기분을 이네스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더니 그녀는 위험 부담이 있는 임신이어서 의사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속사정이 있었더라고요. 이 일로 제가 참 중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끼리는 뭐든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나와 친구의 사생활을 똑같이 존중하자. 친한 친구에게 한동안 연락이 없다면 그냥 가만히 둔다. 특히 프랑스인들이 그걸 잘하는데, 그들에게는 무엇이든 가만히 두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어딘가에서 유명인을 봐도, 누군가의 스캔들을 알아도 혼자 알고 있지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다.


| 프랑스식 관계의 기술

‘그녀는 내 생각대로 된다. 부르면 언제든 온다.’

남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너무 편하고 가벼운 사람은 되기 싫다는 게 프랑스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이를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에서 행동으로 표현할 뿐이다.


내 감정과 속마음 등을 낱낱이 드러낼 필요도 없고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알 듯 모를 듯한 존재로 남는 것. 그 편이 수고를 덜 들이면서 관계를 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만난 프랑스 여자들은 15세, 40세, 50세, 70세 나이와 관계없이 이런 태도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는 건 아니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프랑스 여자들은 그런 아픈 경험을 해도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만남의 진정성을 믿는다는 사실이다.


| 자유로울 것, 독립적일 것, 인생을 즐길 것

“난 아주 독립적인 사람이거든요.”라고 말하는 아니이스. 그 말처럼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과거와 현재,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 어울리는 인생을 걷게 되어 있다.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나의 방백

최근 들어 읽었던 서적들 중 가장 기억에 남으며 좋은 자극이 되는 책이다.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충돌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프랑스인들의 '긍정'과 '쾌활'의 에너지는 분명한 유익이다. 

'프랑스인들은 불친절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그것이 그저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 '개인주의'라는 프랑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 관점임을 깨닫는다. 물론 누군가는 차별적인 태도가 있을 거고 다른 누군가는 없을 테지만 그와 별개로 동양과 서양은 문화적으로 다르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 남편을 둔 일본 여성인데, 이 여성의 생각이 우리나라와 많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동양 문화가 나라마다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어도, 크게는 많이 비슷함을 또 깨닫는다.


담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 이 책의 기록을 2개로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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