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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30. 2018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

Epilogue of Tea Time






1월 24일

리시케시에서 정리하는 그동안의 티 타임

: A R의 대화






#. 카페



일단 나는 지금 이 카페가 엄청 좋은데... 이렇게까지 탁 트인 곳이 없는 거 같거든, 리시케시 안에서도. 다른 데 생각해봐도 이렇게 까지 공간이 열려있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 거 같아. 햇빛도 잘 들어오고, 강도 탁 트이게 잘 보이고, 커피도 나름 괜찮고. 그리고 공교롭게 리시케시에서의 일기를 다 여기서 썼다? 그래서 뭔가... 이 곳이 되게 생각 정리하기 좋은 거 같아. 너는?     


나도 여기 카페가 되게 평화로운 분위기라 좋아. 네 말처럼 해가 잘 들어서 좋고, 커피 맛도 나쁘지 않아. 저번에 마셨던 라떼도 맛있더라. 카페라는 공간이, 확실히 사람들이 쉬러 많이들 오고, 너 말대로 생각 정리를 하러도 오고, 작업하러도 오고... 노닥거리기 좋은 곳인 거 같아 카페라는 장소가.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잖아. 너는 주로 카페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나는 거의, 누구를 만나러 카페를 가기보다는, 누구를 먼저 만나서 같이 카페를 가게 돼. 누군가와 같이 있다가 카페를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고. 두 번 째는 어떤 공간이 필요해서야. 내가 앉아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맞아. 나는 항상 함께 카페를 찾을 때는 마저 이야기를 더 나누려고 간 거 같아. 독서토론 모임도 카페에서 했었고. 여행 와서는 그냥 푹 쉬려고 카페를 많이 찾는 거 같아. 가만히 앉아서 책 읽고, 햇빛 쬐고. 사실 카페라는 장소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찍멀찍 떨어져 있는 게 아니잖아. 근데 신기하게 개인적인 애기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는 거 같아 카페에서는.     






##. 스물다섯



우리 며칠 전에 <화양연화> 봤잖아.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좋았어 정말. 근데, 그런 감정선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이해가 되고, 느린 무드가 지금 딱 나에게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사람들이 ‘몇 살이 되면 이해하게 되는 게 있어’ 하고 자주 말하잖아. 내가 스물다섯이 돼서 화양연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사실 우리가 이제 스물여섯이 됐잖아. 나는 빠른 년생이니까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한 살을 줄여 살아야 하잖아? 문득 내가 화양연화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스물다섯이면 딱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스물다섯에 일 년 더 머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숫자가 주는 안정감이라는 게 있잖아.


나는... 이제는 스물다섯이 지났지만 작년에는 내내 내가 스물다섯이라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하고 살았어. 나이 자각을 여실히 하면서 살았단 말이야. 왜냐면 난 스물다섯을 엄청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나이가 좋았는데, 마냥 어리지도, 나이가 든 것도 아니고, 경계선에서 적당히 어리면서 적당히 성숙한 나이라고 느껴졌거든.      


뭔가 스물넷이랑은 다른 느낌이 있어 다섯이라는 경계선이.


이십 대의 중간이기도 하고. 여기서도 수행자들이 스물다섯까지 수행을 하다가, 스물다섯이 되면 계속 수행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반적인 길로 들어설 건지 결정을 하는 나이라고 하잖아. 그 얘기를 듣는데 엄청 와 닿더라.     


맞아. 근데 그러고 보니 우리는 스물 넷이네 여기서? 여기 나이로 스물넷이네. 아무튼, 나는 처음 스물다섯을 접했던 걸 떠올려보면, 내가 스무 살 처음으로 카페 아르바이트할 때야. 그때  나랑 교대하던 알바 언니가 스물다섯이었어. 그때 그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와 스물다섯은 어른 같다, 하고 생각했거든. 근데 막상 내가 스물다섯이 되고 보니까 아, 이제 어른이구나 느낄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거 같아. 근데 확실히 달라지긴 했어. 그걸 나도 느껴.


나는 스물다섯이 엄청 좋았어. 엄청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 같아.


나에게는 물 흐르듯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또 나름 치열했던 거 같아. 그리고 이제 정말 졸업을 하고, 내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허상이라는 걸 알고, 이제 진짜 내 길을 찾아야 되는 시간이 왔지.


일반적으로 스물다섯이란 나이는, 이제 취업을 해야 하는 나이고......


우리 엄마에게 스물다섯은 빨리 취업해야 할 때지. 빨리 친구들한테 내 딸 좋은 데 취직했다고 자랑하고 싶을 때지.     


나는 스물네 살 때 엄마 생각을 엄청 많이 했는데, 왜냐면 스물네 살에 엄마가 결혼을 했거든. 항상 어떤 나이를 지나칠 때마다 그 나잇대의 엄마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래서 열일곱 살 때는 열일곱 살의 엄마를 생각했고, 스무 살 때도 그랬어.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데 나에게는 스물네 살이 되게 큰 나이였어. 왜냐면 커오면서 엄마의 시간을 생각했을 때, 스물네 살의 엄마는 그때 결혼을 했거든.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한 때잖아. 그래서 막연하게 어릴 때 스물네 살이면 성숙한 나이일 줄 알았다? 왜냐면 엄마가 그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까. 스물다섯 살의 엄마는 이미 애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었을 거잖아. 그래서 그런지 지금 나의 스물다섯이랑은 너무 다른 스물다섯이라 괴리감을 느끼게 됐어. 그전까지는 엄마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교류를 느꼈는데, 스물넷 이후부터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고 결혼생활을 한 걸 알았으니까 더 이상 동질감이나 통하는 느낌을 느낄 수가 없어.     


하긴 우리 엄마 세대 때만 해도 지금 우리 나이면 결혼해서 애 키우고 있을 시기지. 우리 엄마가 늦게 결혼한 거였고.


엄마도 내가 스물넷스물다섯 되니까 지금 네 나이 때 내가 결혼을 했는데, 네 오빠를 낳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 그런 식으로 나이를 실감하기도 하는 거 같아.


그러게. 그러고 보면 나는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스물다섯이 되면 버젓한 직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근데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나이가 상관이 없다고 느끼게 됐어. 지금은 스물다섯이 진짜 어린 나이라고 생각해 나는. 어리지만 모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 뭘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고.






###. 티타임



내 인터뷰를 했던 걸 기억해보면, 치쿠사 카페 안의 분위기가 가장 많이 기억이 나. 애들 인터뷰는,  내가 알던 애들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가 간극이 있기 때문에, 그 간극 동안에 애들이 어떻게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고, 지금은 어떤지 잘 알 수 있었던 인터뷰들이었어. 신기하게 참 누구의 인터뷰를 읽어도 그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라. 걔네가 직접 목소리로 말하는 거 같이 느껴졌어. 재밌었어.


너랑 나랑 상황이 다른 게, 일단 나는 걔네 모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기도 하고, 또 모두와 지속적인 교류가 있던 사람이라 너와 느끼는 바가 다를 거 같아. 너는 열일곱 살 때의 이미지가 강할 거고, 나는 계속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해서 예전과 지금의 모습에서 다이나믹한 감상은 없긴 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친구들이 크고 변했다고 느낄 수 있었어. 또 처음에 기대한 게 있었지, 얘네가 어떤 식으로 내게 이야기를 풀어줄까 하고. 근데 정말 나온 결과물들이 다 자기만의 색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어서 신기했어.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많이 준 것도 아니고, 불쑥 찾아가서 '네 얘기해줘' 한 건데. 그 상황에서도 자기들의 개성을 잘 살려준 거 같아. 나에겐 만족스럽고 좋은 경험이었어. 내가 뭔갈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나와 가깝고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무언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내 측근에다가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지금 이렇게 말하기까지 그 사람이 거쳤을 지난 시간들이 느껴지기도 했고. 지금의 그 말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사람 때문에 슬프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고... ‘굳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돼.’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나도 그게 뭔지 알아.’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난 막상 타이핑할 땐 몰랐는데,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는 또 다르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난 재밌었던 게 애들이 말하면서 ‘다들 같은 생각일 거 같은데’라고 자주 말하는 게 신기했어. 뭔가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나 봐. 심지어 다 똑같은 얘기 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애도 있었고. 근데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같은 의미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 말하니까 그게 재밌었지. 나도 공감은 하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는 걸 표현하는 친구들이 있는 게 재밌었고. 그럴 때는 아,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건 뭔가 너무 공통된 시기를 겪고 있고, 공통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 그런 거 같아. 아무튼, 생각보다 어떤 시기의 내 자취를 남기는 일이란 게 쉽지 않고 또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어.     


맞아. 그리고 우리가 진짜 많은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지만, 내 얘기만 터놓고 할 기회는 거의 없고, 또 터놓고 얘기하기도 힘들잖아. 내가 왜 굳이 이런 얘기를 하나 할 수도 있고, 내가 얻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굳이 하지 않는 얘기들이 많았을 텐데, 다들 그걸 잘 꺼내 준 거 같아.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기 얘기를 하는 시간이 참 중요한 거 같더라. 너무 일반적이고 사소한 얘기더라도, 말을 하면서 태도가 뚜렷해지거나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거니까.

사실 별 거 없이, 일상적으로 만나 얘기를 듣고 한 게 다였지만, 또 그런 핑계로 일대일로 한 명씩 다 만나는 경험도 처음이었고, 이 작업 자체가 나에겐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 좋았어. 그리고 내가 리시케시에서 이 작업을 끝내겠다고 했는데 여기 머무는 한 달 동안 잘 마무리 짓게 되어서 더 마음이 뿌듯하네. 리시케시를 떠나면서 티타임도 끝을 내야지.


나는... 내가 누구 인터뷰를 읽어서 슬펐든 씁쓸했든 간에, S가 마지막에 말한 게 생각나는데, 어찌 됐든 자기는 행복해질 거라고 그랬잖아. 여러 명의 인터뷰를 보고 어떤 감상을 느꼈든 간에, 그냥 다들 이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너 다운 마무리네. 다들 각자의 길을 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     






####. 그들 각자의 에필로그



Y

다 같이 모여 얘기하는 것보다 더 진솔한 말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새로운 면도 알게 된 것 같아. 다른 친구들 이야기 중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고,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좋았어. 내 얘기는 아쉬운 부분이 좀 있더라. 다음에는 더 말로 잘 표현하고 싶어.     


U

우선, 친한 친구인데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말하려니 어색했어. 하지만 말하면서 나의 일 년을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어. 오히려 내가 글을 썼더라면 솔직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고, 과장될 수도 있었을 거 같아.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누니까 정말 ‘티타임’이라는 게 느껴졌어.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또,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안 하잖아. 나의 근황이나 일련의 사건들을 나누는 경우가 많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나도 너희들의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된 것 같고, 내가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소중한 시간이었어. 티타임이.     


B

나는 총 일곱 번은 넘게 내 글을 본 거 같아. 내가 한 얘기라 더 재밌더라. 내 얘기니까 내가 봐도 또 재밌는 거 같아. 내 글을 보기 전까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내보니까 생각이 든 게, 티타임으로 보정된 글 말고 보정 없는 녹음파일로 진솔한 대화도 궁금해졌어. 그리고 이런 기회를 만든 게 대단한 거 같아.








티타임 인터뷰 2017.10.29 - 2017.12.09

정리 기간 2018.01.07 -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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