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대하여
여행을 시작하고 한 달하고도 이 주가 넘는 시간동안의 일기를 매일같이 쓰고 있다. 초등학생때도 방학 마지막 날 울면서 일기를 창작해 몰아쓰던 내게는 참으로 의외의 꾸준함이다.
일기의 시작은, 꾸준함에대한 경애에서였다. 꾸준함이 만들어내는 가치란 얼마나 대단한가. 어쩌면 모든 성취의 시작은 애정을 담은 작은 행위의 반복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여행 중의 매 순간을 기록하는 것 또한, 내 여행에 다른 의의를 부여할 만큼의 가치를 지니게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꽤 오래 버틴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은, 처음 믿었던 가치만큼의 회의감도 조금씩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기를 쓰는게 그저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저 하루의 일과를 나열하는 것에 흥미가 떨어져 무미건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나름의 반복되는 일에서 오는 권태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가끔 기록을 위한 하루를 보내는 걸 느낄 때다. 가령- 오늘은 일기에 뭘 쓰지? 혹은 오늘은 쓸 거리가 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은연 중에 들 때 말이다. 기록이 근본이 되는 삶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피상적인 삶을 벗어나기 위한 여행에서 나는 다시 피상적인 것에 얽메이고 있었다. 다시 묻는다. 이 기록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기록에 대한 회의감은 자주 찾아오는 행사 중 하나긴 하다. 또 한 가지의 피할 수 없는 갈등은 '영원성에 대한 갈망'에 대해서다. 그 순간의 기록은 생생함을 동반한 채로 영원히 박제된다.
언젠가의 나는 다시금 기록들을 찬찬히 살피다가, 순간을 담은 활자들을 통해 그 때를 보다 선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잊어버리고 말았을 길가의 은근한 냄새같은 것 또한 함께 끼어있을 지도 모른다. 추억, 혹은 미련의 이름으로 그 기억들을 찾아 꺼내 보겠지.
그런데 이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혹은 내게 바람직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영원하지 못한 인간이 영원을 갈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하는. 그저 흘러보내면 될 것을, 특별한 순간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굳이 저장해 놓고 마는 것. 욕심이고 삶의 미련일 뿐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가기도 한다.
사고의 한계선이 명확한, 어리석은 인간일 뿐인 나는 '모르겠다, 시작했으니까 끝은 봐야지'하는 마음으로 이번 여행의 기록을 밀고 나갈 것 같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서는 항상 미련 가득한 쪽을 택하고 만다. 하지만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염두하고 있어야 할 문제임은 확실하다. 이 기록의 의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