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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sletter Jan 11. 2022

알아듣지 못할 편지지만

어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며

* 본 글은 pc버전 화면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수는 약 310만 가구로 어느덧 전체 가구수의 15%를 넘어서고 있다. 그 외 다양한 조사에서도 반려동물 양육 가구수는 전체 가구의 약 30%를 차지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시장에선 앞다투어 향후 유망 사업군으로 PET 사업을 얘기하고 있으며, 미디어는 반려동물 관련 콘텐츠를 무수히 쏟아내고 있다. 


좌 :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출처 : KB금융그룹) / 우 : 반려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출처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페이스북)


 가히 반려동물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어스'라는 이름을 가진 한 반려동물과 같은 시공을 영위하고 있다. 어스와 함께한 지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는 설화처럼 어느 순간 우리 집에 기적처럼 갑자기 등장해 지금은 당당한 막내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막내라는 말에 반려동물을 왜 사람처럼 대하느냐고 반문을 던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 집에 왔을 때의 우여곡절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같이 창 밖을 보고 아침 햇살을 맞이하고 함께 집 앞 골목을 거닐고 서로 눕겠다고 이불 위에서 다투는 그 모든 것들을 보고 있자니 '가족'이라는 단어 외에는 이를 형용할 수 있는 단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어스를 우리 집 막내로 공식 선언하기로 했다.


어엿한 우리 집 막내 '어스'

 우리 집 막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날 웃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감히 그게 행복이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준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노력 없이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나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일까? 나는 이 질문들에 부끄럽지만 '아니오'라고 답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간다. 그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표현하고 심지어 대화를 한다. 반려동물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 서로의 생각을 표현할 길이 맛있는 간식을 주는 거 혹은 히융거리는 거 그 정도 수준이 다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즉, 우리는 반려동물보다 조금 더 생각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감정을 만들어 내는 데 유리한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로 하여금 행복을 전달하는 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대화를 할 수 없기에 오롯이 마음을 느끼기만 하는 것일까? 그래서 조금 더 행복에 원천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일까? 어느샌가 나는 우리 집 막내에게 작은 존경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존경심은 언제나 항상 고마움을 내재한다.



 사실 행복은 모순적인 감정이다. 빛이 세게 내리쬘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행복한 시간들이 많아지면 상실의 순간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종종 어스를 껴안고 "어스야 아프지 말고 형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라고 말하곤 한다. 한 통계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개의 평균수명은 14년 정도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사람보다 오래 살진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이 오게 되면 내가 과연 상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분명 슬픔에 잠겨 그리워할 것임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어스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면 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써주리라 그리고 그 편지를 책으로 써서 너의 행복을 기리리라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도 멍청한 생각이었다.


왜 고맙다는 말을 죽고 나서 해?

 

 동생의 한 마디였다. 너무 당연한 얘기였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너에게 전한다는 편지가 너를 위한 것이 아닌 상실 후 힘들어할 내 마음을 위한 거였다. 과거의 나는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말이니 전해지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편지에 담아야 할 것이 마음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놓친 체 말만 담으려 하고 있었다. 한없이 어리석고 부끄러웠다.


 그래도 이제라도 멍청한 나를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속으로 구태여 합리화를 해본다. 그리고 덕분에 행복한 순간들을 모아 혹은 앞으로의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너에게 전할 편지를 쓴다. 알아듣지 못할 편지지만


To. 어스에게

 어스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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