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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sletter Jan 19. 2022

두 번째 편지

어스망진창(엉망진창) 초보 보더콜리 가족

어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To. 어스

 어스야 안녕. 오늘은 처음 네가 집에 오고 모든 게 다 서툴기만 했던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너에게 편지를 써.


 어스야, 집에 처음 왔을 땐 어떤 느낌이었어? 사실 보더콜리인 네가 살기에는 좋은 환경은 아녔을지도 몰라. 큰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도 아니었고, 다른 강아지 식구들이 함께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형, 누나,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고 처음엔 많이 서툴었던 것 같아. 물론, 형만 그랬을 수도 있어. 그럼에도 지금 너무 이쁘게 자라줘서 고마워.


 사실 형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네가 맘껏 뛰놀 수 있는 자연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거야.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강아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는 반려동물 캠핑장이나 펜션을 운영해보고 싶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산책로가 있다한들, 네가 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은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가 널 만나 행복함을 느꼈던 것처럼 너도 대화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강아지 친구를 만났으면 해서 친구들이 언제나 우리 어스를 만나러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그러려면 형이 돈도 많이 벌고, 글도 열심히 써야겠지? 형이 조금 더 노력해볼게.


 처음엔 누나랑 엄마가 너를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형은 그냥 일어나면 씻고 회사에 갔다가 퇴근하고 와서 잠깐 얼굴 보고 그랬던 게 다라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너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많이 미안해. 누나랑 엄마는 직접 우리 어스가 미끄러지지 말라고 조립형 매트를 일일이 사서 다 조립하고, 어스 집도 만들어주고 그랬는데 형은 그러지 못했어. 지나고 보니 그것도 다 그때 어스와 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고 경험이었을 텐데. 그냥 퇴근하면 힘들다고 산책 한번 나가 주는 게 다였던 형이 조금은 민망하네. 누나랑 엄마는 보더콜리는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고 하루에 최소 5번씩 어스랑 산책을 나갔는데. 그래도 항상 네 생각에 가득 차있었어. 형이 다니던 회사에서는 매주 회의시간에 자신의 근황과 서로에게 하고픈 말들을 했었는데 거의 한 달간 형은 네 얘기만 한 거 같아. 그리고 회사 근처 애견용품샵에서 장난감을 사갈 때면 '아, 아버지가 어릴 적 퇴근하며 우리 먹으라고 치킨 사 올 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이럼서 괜히 뭉클하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도 했던 것 같아. 형이 우리 어스 덕분에 살아. 고마워.


네가 동물병원을 갔을 때도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처음엔 예방접종을 맞지 않기도 했고, 너무 어려서 산책을 나갈 수가 없었잖아. 그래서 평일에 병원을 가야 하면 엄마가 너를 꽁꽁 동여매고 나갔던 게 생각나. 그리고 동물병원에서는 처음 보는 물건들과 처음 맡는 냄새들에 호기심을 느껴 막 돌아다니다가도 의사 선생님만 보면 어쩔 줄 몰라서 안겨있는 널 보면 참 웃기고 귀여웠었어. 너도 기억나니? 병원을 조금 다녀본 형, 누나 강아지들은 병원에서 가만히 있는데, 세상 아무것도 모르고 신기해서 돌아다니던 게 얼마나 용맹하면서도 귀엽던지. 형이 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나 봐. 너만 떠오르면 웃음이 나.


이것 말고도 처음 입었던 이소룡 옷도 기억나고, 네 토끼 애착 인형도 생각나고, 참 그때의 너도 지금처럼 계속 이뻤구나 이런 생각이 드네. 아쉽게도 지금은 네가 커버려 찾을 수 없는 모습들이지만 그때의 네 모습과 너를 통해 느낀 감정과 생각들은 언제나 너와 함께 계속 커갈 거야.


편지를 쓰다 보니 형이 서툴었던 모습보다 어릴 때 네 얘기만 계속 한 거 같네. 이렇게 계속 쓰다가는 형이 팔불출 소리 들을까 봐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일게. 다음번에 또 편지 쓸게. 오늘도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어스야.


팔불출 형으로부터.



다양한 어스의 사진과 영상은 어스 인스타그램 계정 @geni.us_ 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좌 : 어스와 애착인형 / 우 : 용맹한 이소룡 어스
새로 깔린 매트에서 꿀잠 주무신 우리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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