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첫 시집 [밤에 갇힌 밤]을 펴내며
자신들은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시인이 되는 일 밖에는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노라고.
더러는 그래서 슬프게 시인을 숙명으로 여겨 외투를 걸치듯 앙상한 어깨에 덧입었고, 더러는 처음부터 자신의 지상 과업으로 여기며 행복에 겨워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고 대단한 대가를 요구한다.
예민한 신경이 곧잘 부리는 서커스에 장단을 맞추지 못하면 공중그네는 가차 없이 광대를 패대기친다.
소설도 못쓰는 주제에 시라고 웬 말이냐 하면서도 소설가도 못 되는 마당에 나는 시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순간 나는, 나도 시인이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섬예함과 그로 인해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데 자꾸 뒷목 잡히고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 의의를 제기하게 되는 불편한 일들의 연속일 것이라는 것을, 일단은 받아들여보겠다는 자기 다짐이기도 하다. 그 신경을 하고서 자꾸만 무엇을 캐묻고 파고들고 자주 외롭고 부끄럽고 괴롭고 슬픈 날들을 견뎌내며 써 내려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의지는 사실 미약한데도 내가 살면서 해봤던 많은 일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 숙명이라 우기면서 그 오버코트를 나도 한 번 덧입어 보자고 나는 강짜를 부리는 중이다.
나는 내 평범을 부정할 수 있는 가장 최후의 방법으로 활자로 하는 예술을 해 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진다.
이 밤에, 그러니까 그것도 하필이면 이 밤에.
하필 시는 밤에 시인을 깨운다.
시인은 부름을 명 받아 밤의 이미지들을, 그 잉크빛 하늘과 칫솔에 묻힌 은색 가루들을 뿌려놓은 별의 반짝임과 검은 구름에 가리어진 달빛과 도시에 내려앉은 고요와 길게 뻗대어 드리우는 행인의 그림자를 받아 적는다. 밤의 메시지를 품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돌돌 말아 쥐고서 시인은 밤의 메신저로 깨어난다.
밤은 미칠 것 같은 시간이다.
아주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절대로 편지도 시도 소설도 무엇도 밤에는 쓰지 말자 해놓고서 밤은 내 모로 누워 잠든 어깨를 사정없이 쥐고 흔든다. 그래도 아랑곳 않으려거든 뺨이라도 후려칠 기세다. 그래 깨우길래 일단은 눈을 비벼 뜨고 앉았다. 잠을 저당 잡히어 나는 밤을 쓰고 앉아있는데 어딘지 좀 억울도 하다. 해서 나는 내가 쓴 밤들을 엮어 한 권의 시집을 기어이 마련해 내 손에 쥐어주고 싶다. 밤도 그 정도는 윤허를 해 줄 줄로 믿는다. 이만하면 그간 밀린 세경을 셈해다가 내 호주머니에 꽂아 넣어 줄 줄로 그렇게 해서 밤과 퉁을 치고 싶다.
너와 나 사이의 계산은 일단 이걸로 치르고 나는 내 밤의 메시지들을 이제 당신들에게 들려줄 채비를 마친다.
나는 많은 밤을 지나왔는데 더 많이 울거나 더 많이 박박 검은 줄을 그어 지워내다가 노트를 구겨 버리다가 다시 풀 죽어 꽁깃 꽁깃 주름진 종이를 손 다림질해 펴내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자주 게으름을 부려댔기에, 그닥 떳떳지는 못하다. 그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나의 회개와 고백이다.
이 말을 하느라 이렇게나 뜸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