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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un 11. 2022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아이러니

숨고 싶지만 발견되고 싶고 혼자 있고 싶지만 관심은 받고 싶고


(커버 사진 출처 Pexels)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차곡차곡 늘어나는 것은 내 아이러니 리스트이다.


아무리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아이러니가 너무나 많다. 과거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지나면 지날수록 여러 가지 모순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열하면 할수록 내가 생각했던 나와 너무 다른 내가 부담스럽다. 불편하다. 이것부터가 아이러니다. 이러이러하길 바랬는데 사실은 이러이러하고, 그 둘이 너무 다른데 그 사이에 끼여서 한쪽 눈으로 죽일 듯 흘겨보고 한쪽 눈에는 그렁 눈물부터 고인다.


세상 속에서 살고 싶지만 또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으면서 또한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싶다.

주목받고 싶으면서도 꼭꼭 숨어버리고 싶다.

존재함에 감사하지만 존재의 수치도 느낀다.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굴어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있어 주길 바라는데 또 한편으로는 단체로 나를 손절해주면 좋겠다.

버림받기 두려우면서도 버림받아지고 싶다.

사람이 그립다가도 사람이 버겁다.

아무도 연락하지 않아주었으면 싶다가도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고 싶다.

무엇이든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가도 무엇이든 깡그리 다 잊어버리고 싶다.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면서 배척하는 건 나이다.

바라는 것은 많은데 나는 손하나 까딱 않고 싶다.

누가 날 좀 와서 꺼내 주면 좋겠는데 아무나 오는 건 싫다.

사랑을 갈구하는데 가슴에 사랑은 식었다.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늘 불안한 선택을 해왔다.

지치면 잠들고 싶었다가도 잠에 들듯 죽었으면 싶었다가 또 살고는 싶다.

자꾸만 부족해서 채우고 채워 넣는데 그럴수록 더 더 더 갈급하다.






도대체 뭘 어쩌라고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러는 것일까?


인사이더를 갈망했으면서 아웃사이더를 자원했다.

숨고 싶지만 발견되고 싶고 홀로 있고 싶어도 관심은 받고 싶다.

찾아내어지고 싶고 추앙받고 싶다.

내어주지는 않을 거면서 받기만 하고 싶다.

어른이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아이로 남길 원하나 보다.


그러니 이제 더는 삶에 핑계를 갖다 붙이지 말자. 그럴 자격이 없다. 손에 흙 묻히기는 싫고 과실은 수확하고 싶으니 앞뒤가 맞지 않아 안 되겠다. 이 와중에도 끝끝내 그러니 자세를 고쳐 앉아 소매를 걷어붙이고 삶을 일구어 보겠다는 말은 안 떨어진다. 이 고집불통으로 인하여 내 삶에 일어났던, 일어난 그리고 일어날 모든 것들의 인과가 자명하다.





이 모든 아이러니의 뿌리가 같다.

세상 끝날 때까지 아무리 개망나니 짓을 해도 변치 않고 날 지지하고 사랑해 달라는 몸부림이다.

한 단어로 정리될 아이러니이다.



애정결핍.



이 지긋한 소악마가 고개를 모로 틀더니 야트막하게 웃는다.






생각할수록 유치뽕짝이다. 아이러니라는 건 이렇게 유치한가보다. 이 밈 스크린샷이 내가 은폐시켜놓은 내 미성숙한 민낯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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