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있는 방

소설 <창문 없는 방> 최종화

by Dichterin 여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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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손바닥을 이마쯤 대고 해를 가리려 팔을 들었다.

곧바로 여자는 팔을 뻗었다. 그 손에 햇살이 만져졌다.


햇살은 여자를 창피스럽게 하거나 집어삼킬 듯 이글대지도 않았다. 여자는 한 참을 서서 그 하얀색 빛을 만졌다. 활짝 벌어진 여자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빛이 통과하여 여자의 감은 두 눈두덩 위에서 춤을 춘다.


리듬은 경쾌하나 경박하지 않았으며 가뿐한 볕의 스텝은 목화송이가 살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눈을 뜨고 싶었다. 미간에 주름을 잡아가며 조심조심 눈꺼풀을 움직여 보았다. 눈 위에서 춤을 추던 햇살이 그녀를 도와 눈을 뜨게 해 주었다. 하얗게 내리 비추는 빛의 정 가운데는 은색이었다. 참으로 따스하고 나른하며 반짝이되 화려하지 않은 친근함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헤벌어진 여자의 입술 사이 검은 공간으로까지 햇빛은 질주하였다.


이제 여자의 몸 안으로 그 모든 태양의 기운이 들어왔다. 온 모세혈관들과 가장 자그마한 세포들 하나하나까지 훑고 지나가며 새로운 피를 수혈받기라도 하듯이 빛의 방문은 그토록 신비롭게 이루어졌다.


여자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해 묵은 각질들을 밀어버리고, 여자의 심장 속에서 잠자던 온갖 색깔의 감정들을 일깨워 여자를 울렸다. 여자의 반쯤 감긴 눈자위에 반짝하고 방울이 맺혔다. 그리고 여자를 웃겼다. 또한 빙그르 돌며 여자를 춤추게 했다.



여자는 이대로라면,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아, 여보시요- 아가씨든가? 잘 지내시고?”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이 자를 알게 된 지도 어언 한 해를 다 해가고 있었다. 유쾌하고 성실한 사람.


그렇잖아도 여자는 중개인에게 먼저 연락을 할 참이었다. 긴히 상의할 게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여자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참에 그에게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래요 그래. 그러지. 앙? 뭐라고라? 공살 하겠다고?”


여자의 말에 중개인은 놀랍다는 투로 대꾸하였다. 여자의 말이 너무나도 침착하고 확고했기에 중개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꼭 일 년 만의 첫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라믄, 그 그림 그린 벽으로 낼 거요? 응 응, 그래 그라고 내라고 하믄 될끼요.

그나저나 창문도 참 아가씨가 기가 맥히게 그려놨드만 뚫을라 하면 쪼까 아깝기는 아까울 것이여- ”







창을 하나 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꼬박 얼마간의 기간만 지나고 나면 꼼꼼히 마감처리를 해주고 간 인부들 덕분에 갖게 되는 근사한 어떤 것이었다. 액자 같은 창문이었다. 여자의 은은한 청자색 벽지를 바른 벽의 한 곳으로 이제 아침과 낮과 해 질 녘과 밤과 계절의 스침과 새들의 비행을 스케치해 담아낼 그림들이 수시로 바뀌어 전시될 곳이다. 창문을 갖는다는 것은 갤러리를 소유하는 일 같다는 생각을 여자는 했다.


언니의 손에 이끌려 다시 여자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본가에 왕래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들 그렇듯, 가면 음식이나 이런저런 집기들을 얻어오기도 하고 그런 식이 었다. 그들 중 아무도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음식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사이임을 그저 재차 확인하였다.


창문가에 여자는 턱을 하나 덧대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창문이 생기고부터 여자는 아침이면 일어나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그 창가 턱에 갓 만들어 김을 올려내는 커피잔을 얹은 채 밖을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다. 창은 크고 유리는 맑고 그 위로 드리워놓은 얇은 레이스 커튼은 벌어진 창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을 타고 너울거린다. 너울거리다가 여자의 뺨을 스치고 달아난다.



계절은 변하고 사람은 그대로라고 여겼다.

자른 머리칼이 다시 길어지듯이, 사람의 기억도 방황 끝에 다시 제 방향을 찾으며, 사람의 마음도 움푹 꺼졌다가도 다시 차 올라 새로운 창을 내 걸어 숨쉬기 시작한다.


결국 사람은 그대로인데, 사람 안의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 안의 사람을 주저앉혔다가도 또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여느 날처럼 창가에 기대서 커피를 마시던 여자는 뜨끈하게 점성 어린 자극을 받았다. 야트막한 경련이 하복부를 타고 내려왔다. 순간 여자는 직감하였다.


바깥의 공기는 차고 햇살은 부시다.




다시 멘스가 찾아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