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문 없는 방>
그날은 공휴일이었다. 집집마다 평소보다 게으름을 피우는 나른하고 노곤한 기운이 동네를 가로질러 가는 날이었다. 오전 나절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점심 때도 놓쳐서는 오후 두 시가 훨씬 지나서야 여자는 시장한 배를 채울 겸 길을 나섰다. 이제는 이따금 제법 찬 바람이 앙칼지게 불기에 여자가 골라 입은 목이 올라오는 앙고라 니트는 유용했다. 뉘엿하게 모로 누운 오후를 위한 메뉴는 칼국수였다.
여자는 안쪽 구석진 자리에서 주문한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때 웬 남자가 한 명 들어와 똑같이 칼국수를 한 그릇 주문한다. 산뜻한 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뒷모습이 어딘지 익숙하여 유심히 보니 그것은 그때의 그 치과의사였다.
여자는 의사를 부르거나 부러 의사의 눈에 띄고자 하지 않았다. 여자는 의식하지 않는 듯 그렇게 조용하게 의사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 의식은, 또한 사뭇 관찰과도 같은 차원의 무엇이었다. 딱 그 정도를 유지하였다. 그저 조용히 자기 앞에 놓인 그릇에 남은 음식물을 먹고 따끈한 국물까지 마시고서 물도 두 컵이나 천천히 음미하듯 들이켰다. 그러기로 아주 작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의사는 여자의 자리를 등지고 앉게 되어있는 곳에 착석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두리번 거리며 이리저리 구경을 하나 싶더니 정면 천장 깨에 달린 평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주말 오락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응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이윽고 그가 주문한 칼국수가 나왔다.
그걸 먹고 있는 의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적당히 그릇 쪽으로 숙이고 면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어깨가 살짝 씩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어깨에서 여자는 처음으로 그 치과 의사의, 그 직업을 가진 남자의 한 구석을 엿보았다. 주 중 한가운데에 떡 하니 찾아온 공휴일을 어찌하지 못하여 그저 시장통의 어느 오래된 칼국수 집에 느적느적 걸어 들어와 열심히 고개를 박고 칼국수를 먹는 그런 구석 말이다.
그에게 칼국수는 어떤 의미일지 그것 한 가지만은 궁금해졌다. 이를테면 울적한 날에 먹고 싶은 음식이라던지 입맛이 없는 날 끌리는 것이라던 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언젠가 자신에게 칼국수를 같이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봐 준 어떤 환자와의 기약 없는 약속이 생각나서 찾아온 것이라던지.
여자는 어쩌면 지금 따뜻한 한 그릇으로 속을 데우는 저 남자는 위로를 받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한쪽 눈을 감고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남자의 어깨가 나머지 한쪽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그러고서 여자는 가만가만, 한 두어 번 남자의 어깨를 허공에서나마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여자는 생각했다. 역시, 저 치는 가운 차림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맞다고.
여자는 일어나서 값을 치르고 가게 문을 닫고 나왔다.
걸어오면서 여자는 아까부터 줄곧 무언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해였다. 오후의 가을 햇살은 부셨다. 부시게, 하얗게 해 가지고는 여자의 정수리를 쏘며 줄곧 따라오고 있었다. 부시게 부서지며 여자의 갈빛 머리칼 올 올을 건드리며 빛은 곤두박질치듯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