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브런치북] 단편소설 - 홍옥 (brunch.co.kr)
이 이야기를 제일 처음으로 구상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때는 빨간 홍옥이 반질반질 알알이 닦여서 청과코너에 전시되는 그런 계절이었다.
단편소설을 몹시도 쓰고 싶었는데, 그때 나는 귀갓길에 한아름 사과를 사가는 여자에 대한 상상을 했다.
기왕이면 여자는 그 사과를 누구한테 사과하는 대신 안겨주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자기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하면서 도리질을 하면서 청과상을 기웃거리다 그냥 지나쳐 가는 모습도 괜찮을까, 아니면 역시 그래도 한 봉지 손에 들려 보내는 게 좋을까를 두고 혼자 열심히 생각했던 날이었다.
그런 생각만을 오래도록 소득도 없이 하고 있던 내가,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적잖은 변화다. 더는 이 이야기를 묵히고 싶지 않다.
전작 <창문 없는 방>처럼 이 이야기도 인물들의 이름을 그리 중요하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 해서, 마치 시리즈물처럼 여기에서도 그저 '여자'라고 하려고 했다가 끝에 가서 마음을 바꿔 그냥 대명사 '그녀'로 치환하였다.
부동산 졸부집 셋째 아들이라는 맞선남이 대뜸 물었던 그 "혹시 유전병 있으십니까?"는 아주 오래전에 내가 아는 어느 여인이 실제로 자기 맞선 자리에서 들었다던 말이다. 이것을 전해 들었을 때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정도로 임팩트가 강해 뇌리에 깊게 박혀버렸다. 물론 그 여인의 그 맞선남은 졸부집 아들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고 그 질문이 나오게 된 맥락도 달랐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내내 언젠가 맞선을 보는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쓰게 되거든 꼭 이런 질문을 구김살 없이 던지는 남자를 등장시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기만 하다가 이제야 한 번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맞선 상대자가 저렇게 물어오더라던 여인의 이야기는 사실은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일화이다.
이 소설은 가을날 어느 오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겨울의 오후에 앉아서도 나는 가을날의 오후를 상상한다. 저물기 직전 쨍하게 쏘아대는 볕은 끝을 모르고 높이 솟은 청명한 하늘에 가 걸렸다. 오후의 가을볕은 집요한데, 죄다 까발릴 듯한 그 기세로 내 뇌 속을 비추어내는 것이다. 가을날의 오후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탐스럽게 잘 익은 빨간 사과 같은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는데 왠지 다 쓰고 보니 결국 나는 '그녀'의 매력을 십 분의 일도 채 다 못 써먹은 채 종결지어버린 것 같다. 나는 인물을 지어놓고 제멋대로 그 운명을 휘저어놓다가 되는대로 팽개쳐버린 책임을 통감한다. 왜 조금 더 '그녀'에게 친절한 오후를 마련해 주지 못했을까, 그렇게 잔뜩 치장까지 시켜놓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내 가슴속 한 구석의 열등감과 같은 것을 투사했다. 한입 사각 베어 물고 급하게 삼키느라 그랬는지 목에 걸려버린 사과 조각 같은 그런 종류의 이물감 같은 것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해놓고 여적 지망생 언저리만 맴도느라 사회적 성취도 뭣도 내세울 게 없는 내가 나는 자주 부끄럽다. 해서, '그녀' 만큼은 그래도 명색이 한 번은 당선도 되어보고 한때나마 어느 일보 문화면에 인터뷰도 실린 이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비록 첫 낭독회는 관객도 하나 없이 텅 빈 골목길에서 치르게 되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에 '그녀'를 뾰족구두를 신겨 위태롭게 저 멀리 보이는 대문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도록 해놓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이제 더는 자기를 방치하지 말고 과거에 매듭짓지 못했던 것들을 하는, 뭣보다도 다시 시를 쓰는 삶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시집을 가는 대신에 시집을 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다음에 '그녀'가 정말 꿈결처럼 내게 시인이 된 이야기를 가지고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나도 나대로 계속 쓰면서 살아보겠다고.
나는 내 허구의 인물에게 그런 바람들을 소망하면서 비로소 조금 홀가분해지고 또 조금은 벅차오르기도 하는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중이다.
[커버에 쓰인 사진의 출처는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