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최종화
08화 홍옥 - 행을 흐린 시 (brunch.co.kr)
핸드백 안에서는 벌써 여러 번 진동이 울려댔다. 새로 걸려올 때마다 진동의 길이는 늘어났다.
높다란 뾰족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한쪽 어깨에 매고는 만 오천 원어치의 과일을 잔뜩 담은 무거운 봉지를 끌어안아 들고 그녀는 집으로 향한다. 봉투 사이로 맨 위에 얹힌 반지르르 윤이나는 빨갛게 잘 익은 홍옥 한알이 빠져나올 듯 빼꼼하다.
그녀는 엄마에게 사과를 한 아름 안겨주고 싶어졌다. 아까부터 자꾸 엄마에게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있는데 반질 하게 탐스러운 홍옥을 안겨주면 엄마가 자신의 사과를 받아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또 그녀는 조금 웃는다. 걸어가는 내내 어쩐지 계속 실없는 아이처럼, 그러다가 한 번씩 고개를 도리질 치듯 그렇게 사로잡힌 생각을 털어낸다.
비틀비틀 위태로운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급기야 툭- 하더니 봉지가 뜯어졌다. 빨간 열매들 몇 알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앞으로 몇 걸음을 구르다가 멈춰 섰다.
그녀는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길바닥에 널찍하게 보자기처럼 펼치고는 과일들을 담아 여미고는 손잡이처럼 공간을 만들어 매듭을 지었다. 이제 이렇게 다시 일어나서 천천히 걸어가서 대문에 다다르면 초인종을 누르고 그럼 아마도 엄마가 나와주면 그녀는 이 빨간 아이들을 선물처럼 건네주겠다고, 또 엄마를 와락 힘껏 안아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우선은 모처럼 신은 구두에 갇혀 콕콕 거리며 아우성을 질러대는 발가락들을 달래주어야 한다.
'조금만 기다려. 다 와 간다--'
이제 저 너머로 대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종일 등등한 기세로 쫓아다니던 햇살은 어쩐지 퇴근을 서두르더라니, 골목에는 어스름이 드리워진다.
가을의 오후는 저물어 길게 꼬리를 뺀 해 그림자만 그녀의 발아래 융단을 깔아주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