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옥 - 행을 흐린 시

[단편소설]

by Dichterin 여자시인

07화 홍옥 - 분실물 (brunch.co.kr)





하여 그녀는 돌아오는 길이다.


미용실에서 네 사람이나 달라붙어서 드라이를 하고 컬을 넣어 말아주는 갖은 호사를 누린 머릿결이 나풀거린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으면 곧장 뒤에서 따라 붙이는 바람에 경쾌한 컬은 스르르 저들끼리 뒤엉킨다.

불편한 치장들과 불편한 만남, 불편한 계산, 불편한 말들. 차라리 후련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것도 안고 갈 소식이 없다. 벌써 핸드백 안에서는 그녀가 소식도 없이 돌아가는 중이라는 소식이 제일 먼저 가 닿은 곳에서 계속해서 전화를 해대느라 진동이 울린다.


신호등 기둥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 의지한 채로 그녀는 그 막간을 이용하여 구두 뒤축에서 잠시 발을 뺐다. 뒤꿈치는 빨갛게 잔뜩 성이 났다. 그때였다. 신호가 바뀌고 그녀는 건널목을 천천히 건넌다. 긴 건널목의 절반을 넘게 걸어가고 있는데 바로 저기, 건너편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청과상이 그녀의 눈길을 붙들었다.







그녀는 길을 건너 가게에 다다랐다.


청과상 진열대에 놓인 과일들은 하나같이 잘 생긴 햇과일들이다. 과일들은 주인이 어찌나 잘 매만져 놓았던지 그 위로 오늘 하룻나절 가을볕을 잔뜩 받아놓고도 주근깨 하나 없다. 그녀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홍옥들이 잘 익어 반질반질했다. 그 옆의 무화과며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한 홍시도 새초롬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빨갛고 동그랗고 윤이 나는 것들로 사과를 몇 개나 골랐는지 모른다. 홍시들도 넣었다.



커다랗고 묵직한 봉지가 건네 졌고 주인은



만 오천 원 주면 돼요-


했다.




만 오천 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주인에게 주었다.



그나저나 들고 갈 수나 있겠소?



주인이 거스름돈을 내주면서 덧붙였다.


그녀는 그냥 조용하게 웃어 보이고는 말한다.



안고 가려고요-



그러다 약간 휘청- 곧 중심을 되찾고 가게에서 걸어 나왔다.



저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녀는 뒷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오늘 다녀왔던 길들을 등지고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정이 유전이라
이별은 아프기만 한데,
별들이 대신 가슴도 앓아주는
이 밤, 여기

하여
나는 앓을 것이 남지 않은...
이 밤... 여기....
여기에서....



아무도 없는 그 골목,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길은 아직도 멀어 시인은 천천히 그저 읊기만 하면 되는데, 자꾸 행을 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