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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Jan 25. 2019

디어,인도

02화. 베이비, 노밀크, 노머니_떨림일까, 두려움일까

얼마 전,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들은 말이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두근거림은 설레임이 아니라 거절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두근거림이라는 말이었다. 그니까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거부할까 두려워서 떨린다는 소리다. 맞는 말이었다. 두근거림은 언제나 설레는 의미보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시작하는 일이 많았다. 인도 여행. 그 시작 또한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떨림이었다. 잘 모르는 나라에 가서 내가 대처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비행기에서는 가이드북을 펼치고서 연필로 계속 밑줄을 그으며 머릿 속으로 3주간의 여정을 그렸다. 원래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 책 한 권을 다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불안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정신 차리고 다니자는 무언의 다짐과 함께 최대한 많은 양의 정보를 넣으려고 한 것이다. 삶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기회를 준다면 인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번 눌렀을 것이다(그땐 많이 떨렸다). 방콕 수완나품 국제 공항을 경유해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 콜카타로 향했다. 비행기를 갈아탔을 때, 비로소 인도 사람들이 내 주변 좌석을 전부 채웠고 그들의 시큼한 체취를 맡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공항 택시 부스에서 잔돈을 주지않고 빤히 바라만 보는 직원을 만났고, 비로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 인도를 실감했다. 가이드북에서는 택시비도 도착지에 정확히 가기 전까지는 미리 주면 안 된다고 했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 내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콜카타에서 여행자들의 거리라 일컬어지는 서더 스트릿에 가기까지 택시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신기하고 기이했다. 짓다 만듯한 알록달록한 건물, 만석 인원의 세배는 사람이 들어찬 듯한 버스, 맨발로 자전거를 타며 도로를 누비는 사람들, 차와 사람 사이를 비집고 소가 천천히 차도를 지난다. 택시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는 사이 오토바이 뒷 자석에 타있는 꼬맹이가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택시는 좀더 내밀한 골목으로 들어섰고 차도에서 본 혼잡스러움은 맛보기인 듯. 골목길 안은 말도 안되게 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가난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 깊은 한숨이 나왔다. 더위를 먹고 길가에 널부러진 개들, 더 놀랍게도 그 개들과 구분없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 헤진 옷들과 맨발바닥이 이들의 삶이 얼마나 빈곤한지 보여주었다. 태어나서 내가 보고 듣고 겪은 가난은 가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흑색 피부를 지닌 사람들은 의자 하나가 들어갈 작은 방에 앉아 너무나도 태연하게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거리에서


아침 8시, 너무 이른 시간에 서더 스트릿에 도착한 탓에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먹을 거라곤 날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길거리 음식뿐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서 하릴없이 골목을 기웃거리며 모르는 언어와 낡아빠진 건물 모양새. 인도의 생소한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헬로, 택시, 차이나?’ 한마디씩 건네는 사람들의 말을 못 들은 척 지나쳤다. 모두가 피부색이 다른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도 아무렇지 않은 척 쉼 없이 걸었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처음이라 낯설고 긴장된 두려움이 최고조였던 상태였다. 어떤 무리는 내 손을 잡고 밥을 먹자고 했고 한 아주머니는 아이를 손에 잡고서 나를 졸졸 따라왔다. 


‘베이비, 노밀크, 노머니’ 


적선은 하면 안 된다고 사전에 인지했지만,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을 피해 앞만 보고 걷다가 큰 도로가 나오니, 아까와는 달리 정갈한 길거리에 차림새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고작 100m를 사이에 두고 생활 풍경이 바뀌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안전지대 스타벅스로 들어가 앉았다. 어느새 등이 땀으로 다 젖었다. 


거리에서


소음으로 시끄러운 거리
까마귀 

더운 시기에 시작한 여행이라 후끈한 공기가 몸을 감싸 지치기만 했다. 택시 타기, 숙소 찾아가기, 여권과 귀중품 잘 간수하기, 모두 긴장되는 일이었다. 일단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잘 도착했다고 연락했다. 심호흡을 고르고 카페 창가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은 두려움뿐이지만, 카페 바깥에도 나무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 있을 터였다. 저 창 밖에서 잘 지내보자며 나를 다독이고 구글 지도를 켜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 천장에는 공포영화에서 꼭 시체가 걸려있던 펜 선풍기가 돌아갔고 침대와 옷장은 낡아서 삐걱거렸다. 끝까지 공포영화네. 망했어. 생각하다 해야할 일을 적다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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