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도 말했다시피, 정화는 피지 못할 형편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자꾸만 살림살이를 줄여나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고 더러 버려져야 했던 작품들도 있었다. 젊은 날, 그녀가 힘과 열정을 다해 바쳐온 작품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정화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래서였을까. 정화는 일을 끝내고 퇴근한, 늦은 저녁 시간마다 혹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쉴 수 있었던 휴일마다 자신 만의 예술 세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정화가 제일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예쁜 글씨, 그러니까 POP 글씨였다. POP 글씨 쓰기는 포스터물감을 이용해 글씨를 개성 있게 그려내는 것이었는데, 정화가 바쁜 일상 중에서 짬을 내어 작품을 만들기엔 아주 탁월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정화의 근무 시간은 정말 악랄했다. 아침 9시 반부터 저녁 10시까지. 거의 하루종일 일터에 매달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렇더라도 정화의 예술혼은 꺼질 줄을 몰랐다. 정화는 잠을 줄여가면서 글씨를 그려 나갔다. 집에서는 포스터물감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정화는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고, 재우고, 글씨를 그렸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정화는 많은 작품들을 그렸지만 전부 다 간직하진 못했다고 했다.
"이걸 왜 다 버리세요? 진짜 잘 그리셨는데...."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사를 가야 하는데 어쩔 수가 없잖니."
정화가 말한 그 '어쩔 수 없음'이 내 마음을 차갑게 눌렀다. 정화가 싹 틔운 예술혼은 분명 훌륭한 것이었으나 생계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모든 것을 억압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토록 예술에 진심인 사람에게, 가난한 내가 해 줄 것이라곤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말뿐인 응원이라는 게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나는 정화가 버렸을 수많은 작품들에 대해 침묵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더라도 실은 그런 정화를 이해하기까진 숱한 세월이 지난 후라야 했다. 그전까지는 집에 쌓여있는 그림들, POP 글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있는 모든 살림살이들의 숫자를 외울 수 있을 만큼이나 통제적이고 결벽적이었던 나에게 있어 정화의 작품 세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스물몇 살의 나에게는 정화의 취향 혹은 정화의 세계가 온전히 수용되질 못했다. 나는 정화의 작품들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대신 울화통이 터지는 걸 못 견뎌했다.
그렇다. 나는 결코 착하고 유순한 며느리가 아니었다. 정화의 작품은 분명 뛰어났지만 가정집인지, 만물상인지를 도통 구분할 수 없는 이 집의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이걸 왜 버리세요?"인데, 그 속 뜻은 "이렇게 짐이 많은데 이걸 왜 (안) 버리세요?"이다. 나의 바람은 미니멀함이었고, 그에 비하면 종화의 작품들은 맥시멈 한 수준이었다.
우리의 갈등은 여기서 출발한다. 시어머니, 정화와 소리 없는 총격전이 시작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