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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Dec 19. 2024

이걸 왜 버리세요?

세월의 바람과 함께, 작품들은 지금껏 제 자리를 버텨왔다

지난 글에 밝힌 대로 시어머니, 정화는 도예를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 명장에게서 사사하여서.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저기에 놓인 도기와 자기들이 참 신기했다. 그땐 정화가 도예 공방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만 남자친구는 정화가 고깃집에서 홀서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의 귀천이 없긴 하지만, 도예를 빚는 사람이 홀서빙을 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나중에 정화에게 물었다. 도예 공방으로 생계를 꾸리면 되지 않느냐고. 정화는 말했다. 예술보다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정화의 눈가가 어쩐지 촉촉했다.

정화의 섬세함이 실린 작품이다. 균일하게 그리느라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갈라진 듯한 결이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정화는 한때 이 모든 작품들을 버리려 했다고도 말해주었다. 나는 "이걸 아깝게 왜 버려요?"라고 답했다. 정화의 재능과 열정이 함축된 이 작품들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정화가 한참 생활고에 시달릴 때 짐을 줄여 이사를 가는 바람에 작품들은 곧 짐덩어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언젠가는 개인전을 열어서 전시할 거라고,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정화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새겨진 작품들. 참고로 저 호돌이 컵은 커스터마이징한 것이라 판매한 것이 아니다.
우리 집 식탁 위에 놓인 간장 종지와 수저받침이다. 날마다 사용한다.

정화의 지난한 세월과 열정에 나도 괜스레 눈을 붉혔다. 정화가 지켜온 이 도예 작품들은 곧 정화의 예술혼이자 마지막 자존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니 정화가 이것들을 버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정화의 작품은 정화뿐 아니라 그 후대에도 고이 남겨야 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정화는 손아귀의 힘이 정말 센 사람이다. 그런 것도 도기를 만들면서 다부진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정화와 팔씨름을 했는데 손가락 사이에 깍지를 끼자마자 '졌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0.1초도 버티지 못하고 KO를 당하고 말았다. 참 기가 막히게 힘센 여자, 정화다.

정화가 이건 꼭 사진으로 남겨서 세상에 알려 달라고 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귀한 작품이다.
우리 집에 도기가 하도 많아서 약상자나 잡동사니를 넣는 단지로도 쓴다.

그런 힘과 자부심으로 여기까지 살아왔으니, 정화의 작품들도 그만큼의 의미가 돋보인다. 단순히 정화가 잘 만들고 잘 빚었다는 미학적인 것보다는, 정화가 살아온 인생의 풍파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작품이 더욱 빛이 나고 아름다운 것이, 작품 속에 녹아든 메시지의 정확한 표현이다.


이제 정화는 도예를 하지 않지만 한 자리에 남은 작품들은 여전히 그녀의 아름다움을 밝히고 있다. 정화의 기술과 감수성이 녹아든 이 작품들을 언제라야 세상에 공개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 정화를 부를 때 '김정화 작가'로 해야 할지 '김정화 옹'으로 해야 할지도 상당히 고민된다. 뭐, 어떻게 부르든 정화는 예술가니까!

 

우리 아티스트 김정화 여사의 무궁한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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