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꿈이었던 붓을 집어 들었다.
고깃집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홀서빙을 하면서 아들 둘을 키우던 정화에게는 남 모를 취미가 있었다. 정화는 쉬는 날이면 집 근처 POP학원을 방문했다. 거기서 ‘예쁜 글씨 쓰기’를 연습하고 온종일 스케치북을 가득 채웠다. 정화의 스케치북에는 ‘어서 오세요’부터 시작해 ‘사랑해요’와 ‘감사해요’가 가득 차있었다. 나에게는 따로 말을 해주진 않았는데, 계절을 맞아 집구석을 뒤집어엎으면서 자연스레 정화의 스케치북을 발견하게 되었다. 알록달록한 무늬로 뒤덮여 깔끔하게 그어진 포스터물감 자국. 그 위로 덧칠된 붓 터치가 섬세한 정화의 성품을 말해주는 듯했다. 정화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주니 그것도 꽤 오래전에 했던 과거의 취미라고 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려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정화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서 자꾸 따라다니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랬더니 정화는 사실 결혼 전 미대에 다니던 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아아, 이 숨길 수 없는 재능이여. 나는 정화의 말에 수긍했다. ‘예쁜 글씨‘ 하나 만으로 어떻게 재능을 다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싶겠지만 사실 그 스케치북에는 요술이 담겨 있었다. 정화의 스케치북 안에는 연습용 스케치들과 그림들이 담겨 있었다. 글씨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정화는 사람을 그리고 꽃을 그리고 풍경을 그려냈다. 결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던 학업의 아쉬움은 이렇듯 뒤늦게 피어나고 있었다. 정화의 재능을 알아본 나는 시에서 지원하는 전시회에 기획서를 제출해보기도 하고 전시장을 대관하려 알아보고 다니기도 했다. 정화는 법석 그만 떨라고 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잔뜩 걸려 있었다.
정화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건 정화가 본격적인 붓질을 배우게 되면서부터였다. 내가 출근하는 사무실 근처에 미대 출신의 카페 사장님이 드로잉 수업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한 달에 40만 원 정도였는데 그 정도면 밥을 좀 굶더라도 정화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번에 한 달치를 결제했고, 그 주부터 정화는 수업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달간. 처음에 머뭇거리던 정화의 터치는 갈수록 과감해지고 신속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정화는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캔버스 하나를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
정화는 세월 속에 잃어버렸던 자신의 색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제 초보적인 드로잉 수업 만으로는 창작욕을 다 담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정화를 부추겨 작업실을 열고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받자고 제안했다. 학업적인 면에 있어서도 대학원에 진학하기 어렵다면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에 등록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정화는 마다했다. 그녀가 원한 것은 나와 다른 것이었다. 정화는 그저 창작만을 원했다. 그림을 배우는 과정을 더 밟고 본격적으로 상업 작가로 들어서서 푼돈이라도 벌려는 나의 초라한 수작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정화가 말했다.
“나는 그리고 싶어.”
이 얼마나 원초적이고 순수한 말인가! 예술품을 한낱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나와 같은 속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순수함이란! 나는 정화의 말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진행하자고 아득바득 우기던 개인 전시회도 마다했다. 대신에 그녀는 자신과 함께 그림으로 우정을 다져갈 친우를 원했다. 드로잉 수업이 종료되던 날에도 그녀는 아쉬움을 다 잡지 못했다. 그런데도 더 나은 스승과 벗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머지않은 시기에 그 기회가 다가왔다. 그건 동네 행정복지센터의 수채화 드로잉 교실에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정화가 환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요 앞에 행정복지센터에서 드로잉 수업이 있대. 몇 만 원 밖에 안 한다더라. 이전에 받은 드로잉 수업보다 저렴하지 않니?”
심지어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등록해 버렸다고도 했다. 정화의 실행력이 놀라웠다. 원래 확실히 하겠다는 확신이 서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실행하는 편이긴 하다만, 소문만 들어서는 그 교실이 어떠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수업료도 다 냈고 정화는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치였고. 거기다가 신중하라는 식의 조언은 분위기 초 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걱정을 더하기보다는 잘 되었다는 말로 그녀를 다독였다.
들떠있는 정화가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기대했는데 만약 강사의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방문 미술 교습을 따로 붙여 드려야 하나? 아니면 입시 미술 학원을 하나 끊어 드려야 하나? 여러 고민들이 엇갈렸지만, 일단은 그녀의 판단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화의 미술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