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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Nov 14. 2024

시어머니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2)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란히 앉아 필라테스를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필라테스 강의가 시작되고 정화는 어리둥절했다. 요가조차도 해본 적 없는 경험을 지금, 이곳에서 겪어 나가고 있으니. 내 얘기를 미리 전해들은 필라테스 선생님은 반갑게 목례를 했다. 뒤이어 정화가 아픈 곳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무릎이 안 좋아요. 그래서 시술도 받았어요."

"그러면 조심히 움직이시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아프다, 싶으면 꼭 말씀하세요."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이윽고 본격적인 필라테스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동작부터 난제였다. 양반 다리로 앉은 상태에서 두 팔을 등 뒤로 보내고, 고개를 뒤로 떨구어야 했다. 정화는 다리를 어떻게 꼬아 앉아야 하는지 헷갈려 했지만 곧잘 따라했다. 동작을 바꿀 때가 다가오자 고개를 정면으로 꺾었다. 정화는 현기증이 났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정화는 한 다리로 서있는 동작을 하면서 깡총깡총 뛰기도 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웃음이 났는데, 마침 선생님도 그 모습을 보셨는지 가만히 동작을 잡아주었다.


그래도 정화는 주눅들지 않았다. 정화는 간혹 가다 시린 무릎을 두드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동작을 그만 두지도 않았다. 느긋하지만 신중히 움직이는 정화의 몸놀림이 사뭇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화는 숙련된 체조 선수처럼 목을 길게 늘이며 손가락을 섬세하게 뻗었다. 정화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보였다. 그런 사실이 무척 뿌듯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걷기 운동 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운동의 전부, 라고 생각해왔을 텐데 이제는 그런 정화의 세상이 한 뼘 더 넓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른팔을 왼팔 위에 걸고서 오른팔을 몸통쪽으로 쭉 당기세요."

"유지할게요. 셋, 둘, 하나."

"이제는 공을 활용할게요. 엎드린 상태에서 왼손을 뻗어 공 위에 올려놓은 뒤 몸통을 위로 끌어당기면서 공을 지긋이 눌러 줍니다."


선생님의 지시 사항을 따르면서 나 역시도 땀을 흘렸지만, 온갖 신경은 정화에게 가 있었다. 정화가 버거워하지는 않을까, 정화가 지루해하지는 않을까, 정화가 잘 따라오고 있을까, 정화의 무릎은 안전할까. 각종 염려들이 마음 속에서 한 데 섞여 가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에 정화가 있음에도 나는 어쩐지 그녀의 뒤에서 얌전하게 앉아 동작 하나하나를 뜯어 보는 것만 같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침내 50분의 수업 시간이 끝나고 서로에게 격려의 인사를 하는 것으로 필라테스가 마무리되었다. 정화는 잔뜩 펼치고 있던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헉헉거렸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선생님이 얼른 말을 붙였다.


"수업 따라오시기는 어떠세요? 힘들진 않으세요?"


정화는 말했다.


"그래도 해야죠. 열심히 해서 건강해져야죠. 아유."

"하하. 그럼요.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환갑은 넘었지요."

"어머, 연세가 조금 있으셨군요. 그러면 더욱더 열심히 하셔야 해요. 나이가 들면서 근력 운동을 소홀히 하시면 안 되거든요."

"그래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네. 다음 시간에도 뵙겠습니다."


선생님과의 간단한 이야기가 끝나자 정화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었다. 뒷굽을 구겨 신은 걸 고쳐 신으려고 복도의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물었다.


"진짜 괜찮으시죠? 따라하시기 괜찮죠?"

"죽을 거 같다."


정화의 속마음에 나는 후후, 웃었다.


"그래도 잘 따라하시던데요?"

"환불 해라."

"안돼요. 수강료 다 내서 환불 안돼요."

"그럼 다녀야겠네."

"별 수 없죠."

"아이고, 그러니까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야 운동을 하시죠."

"모르겠다. 마음 대로 해."

"다음주에도 또 오셔야죠."

"나는 몰러."


휙 돌아서는 정화가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정화는 벌써 6개월 째 필라테스를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러자 얼굴이 조금 익숙해지자 필라테스를 듣는 수강생들이 물어 봤다.


"둘이 무슨 사이세요? 딸이랑 어머니세요?"

"아니오. 얘가 우리 며느님이예요."

"네에?"


다들 놀라며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필라테스 수업에 딸과 어머니가 함께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대체로 몇 번 나오다가 마는, 포기가 빠른 케이스가 많았다. 더군다나 우리는 여름 학기를 지나 가을 학기, 그리고 겨울 학기까지 다니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필라테스를 나란히 듣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어쩌면 나로 인해 시작된 강제적 관계이지만, 어느새 정화도 익숙해졌는지 때때로 나보다 일찍 도착해서는 내 자리까지 맡을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정화는 꽤 능숙하게 동작들을 따라하게 되었다. 초반에 무릎이 아프다는 이유로 몇몇 동작들을 따라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다가 저보다 더 잘 하시는 거 아니예요?"

"야, 내가 너보다 더 잘하더라. 너는 손 뻗어서 몸통 구부리기 못 하잖아. 나는 엄청 유연해서 다 잘 돼." 

"그건 그렇네요! 저보다 더 잘하시는 게 많군요."

"네, 그렇군요."


정화는 우등생의 미소를 지으며 씩씩하게 문화센터의 문을 열었다. 정화의 뒷모습이 굉장히 유쾌해보였다. 나는 그 뒤를 종종 쫓아가면서 정화와 함께하는 필라테스 시간이 또 한번 기대되었다. 돌아오는 화요일에는 정화를 위해서 필라테스 바지를 하나 사려고 한다. 정화의 마음에 들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필라테스반의 우등생인 정화에게 뭔들 해주랴. 나는 그런 정화가 상당히 자랑스럽다.


정화와 함께 오랫동안 필라테스를 다니고 싶다. 그것이 우리에게 크고 작은 다정함이 되도록. 지금처럼.


반려견과 산책 중인 정화. 흐드러진 봄 기운 안에서 함께 산책하며 따스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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