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단우 Oct 31. 2024

어머니는 불편해

친어머니가? 아니면 시어머니가?

겨울방학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면서 느슨해진 일상도 단단히 조여야만 했다. 그 사이 정화는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고깃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나는 정화가 없는 집안을 도맡아 살림하고 있었다. 남편과 겨우 둘만 사는 집이라지만 어쨌든 시댁에 얹혀사는 것이다 보니 안방, 작은방, 신혼방까지 모두 다 관리를 해야 했다. 유독 결벽증과 경계가 강했던 친정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문틈과 손잡이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닦아댔다. 나는 P성향이 강했던 정화의 아들에게 무지막지하게 화를 냈고, 그는 끊임없이 내 눈치를 보며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렸다. 혼수로 데려온 늙은 개는 다행히 실외배변을 하는 통에 배설물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목욕을 해야 했다.


그런 행위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즈음 내 속에는 친어머니의 목소리가 최대치의 볼륨을 올리고 있었다.


'똑바로 청소해.'

'집안이 똥통이냐?'

'바닥을 혓바닥으로 핥아 봐라. 더러운가 안 더러운가.'

'이 따위로 집구석을 말아먹지 마라.'


온갖 종류의 욕과 구박을 당하던 친어머니의 목소리가 마음에서 울렸다. 나는 친어머니의 목소리에 시달리며 가상의 무언가에 만족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걸레질을 했다. 학교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면 서너 시간은 꼭 청소에 매달렸다. 나는 청소를 하며 한편으로 나를 지워가고 있었다. 점차 내가 누구인지, 꿈은 무엇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정화의 아들은 처음에는 나를 걱정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버렸는지 결국 말수를 줄였다.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깨달은 것은 교양수업에서 '심리학' 교수님을 만나고부터였다. 수업이 다 끝난 후 분주히 이동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쭈뼛쭈뼛 서있었다. 교수님과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가까이 다가가 내 사정을 토해냈다. 교수님은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면서 아마도 심각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소속된 센터의 상담전문가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명함을 받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 상담 예약을 했다.


상담센터에 도착해서는 들어갈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다. 발길을 돌릴까 하다가 1시간 30분이나 걸려 온 상담센터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상담선생님께 과거의 조각을 나누었다.


"학대 트라우마 같은데요. 병원은 가보셨나요?"


나는 상담선생님을 통해 서른이 가까이 되어서야 내가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히 친정이 불건강한 곳이라는 걸 막연히 느끼고 있었지만,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그 입에서 '학대'와 '폭력' 혹은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청소에 집착하는 내 행동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라우마 때문에 강박증이 생긴 것 같아요. 약물치료도 필요해 보여요."


이런 말을 듣자 상당히 절망했다. 과거가 불행한 사람의 몫은 결국 이런 것이란 말인가. 나는 기운이 빠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저녁께 가 되어서야 정화의 아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해나갔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사실은 어머니께서 네가 조금 아픈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대."


상담센터에서 들었던 말들보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는 말을 이었다.


"너도 자식인데 같이 살아가면서 나아가자고 얘기하시더라."


나는 그의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반대로 내가 시어머니라면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이왕이면 정신도 건강하고 혼수도 넉넉히 가져온 며느리가, 나 같은 환경에 처한 며느리보다 훨씬 더 낫지 않나. 오히려 정화의 말에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된 기분이었다. 나는 정화의 말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시에 나의 혼란함은 온통 청소에 흡입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청소에 집착했다. 게다가 건물 바닥에 있는 대리석 타일마다 줄눈이 그어진 곳은 꼭 건너뛰었다. 빨래방에도 3일에 한 번씩 찾아가 이불을 빨래했다. 잦은 목욕과 빗질로 강아지의 등허리에는 조그마한 탈모자국이 생겼다. 하지만 청소를 하면 할수록 나는 불행해지고 있었다. 행복은 무엇일까?


이 와중에 정화가 주말을 맞아 집으로 올라왔다. 정화는 반찬거리와 짐보따리를 늘어놓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화에게는 잘못이 없었지만 마치 잘못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화는 곧 자꾸 흘깃대는 나를 발견했고 머쓱한 표정으로 "곧 치울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정화가 지나간 자리에 희미하게 박혀있는 발자국을 걸레로 문질렀다. 정화가 머무는 동안 화장실을 락스로 여러 차례 청소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행주로 싱크대를 꼼꼼하게 닦은 뒤 소금물에 끓여 소독했다. 정화는 청소에 미쳐있는 나를 보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빛의 공간에서도 훨씬 더 빛나는 정화


'네 꼴을 보면 시댁에서 소박맞기 마련이지. 꼭 너 같은 딸년 낳아라.'


친어머니의 말이 가슴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정화는 불편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청소를 멈출 수는 없었다. 정화는 청소기를 세 번째 돌리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 쉬어라."


이 말이 꼭 설날에 겪었던, 정화가 마음 놓고 끼니때를 기다리면 곧 밥상을 차려주겠다는, 그런 느낌의 말로 다가왔다. 정화는 내 손에서 청소기를 가져가 전기코드를 뺐다. 정화의 신속함에 나는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정화는 겨우 청소기의 코드를 뺀 것이지만, 나에게는 친어머니가 꽂아두었던 학대의 코드를 단숨에 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서있기만 하다가 밥 먹으러 오라는 정화의 목소리에 땡, 하고 깨어났다.


밥상에는 고등어, 낙지볶음, 육전, 시금치 무침과 숙주나물 무침, 갈비찜 등이 놓여 있었다. 대충 추려봐도 능히 열 가지는 넘어 보였다. 설날 때보다 밥상이 더 풍성해 보였다. 나는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목구멍으로 밥알이 굴러 내려가면서 친어머니의 욕설이 조그맣게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정화는 많이 먹으라며 내 숟갈 위에 고기를 한 점 올려 주었다. 그것을 씹으니 친어머니의 얼굴이 희미해져 갔다. 학대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줄어가는 친어머니의 자리를 감각하며 저녁밥을 먹었다. 정화는 마법사일까.


정화는 지금도 저녁밥상을 차려준다. 그녀의 밥을 먹노라면 하루 내내 울리던 친어머니의 목소리가 줄어든다. 세상의 무서운 것들도 으적으적 씹혀 사라진다. 다 먹었으면 좀 쉬어라,라는 정화의 말은 과거의 상념에 빠져있던 잠깐의 순간을 일깨운다. 정화는 과연 마법사일까. 과거의 소리들을 불편하게 뒤척이며 새 인생으로 솎아내는 그녀의 밥상이 늘 즐겁다.


두 어머니는 서로 다른 의미로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데도 나는 정화의 불편함이 다정하고, 좋다. 지난 20여 년을 살아온 내 핏줄보다 정화가 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정화의 웃음을 바라보며 어머니라는 구원에 밥숟갈을 떠 올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