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가 살아라, 라고.
나는 가난했다. 가난함이 익숙해질 때쯤 결혼은 무리라고 생각해왔다. 아버지는 늘 빚쟁이에게 쫓기느라 인생을 허비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악다구니를 지르며 이혼을 노래했다. 동생은 반항이 가득한 사춘기를 보내면서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늘 나에게 고지식한 헛똑똑이라며 조롱했다. 나는 절대 빈곤의 이 환경을 바라보면서 누군가와 함께 이 가난을 극복해가는 건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렸을 적 읽었던 "옛날 옛날에 아주 아름다운 공주님이 살았어요"에서 그 공주님, 하얗고 눈이 크고 모두가 흠모하는 외모와 지위, 그리고 재력을 가진, 만이 그런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는 연애 감정을 갖고 싶었다. '연애'가 아닌 '연애 감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렇게 가난하고 꾀죄죄한 사람을 아무도 좋아할 리 없으니 유사한 감정만이라도 가지고 싶은 소원이랄까, 그 때문이었다. 나는 순정만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러브 스토리를 소비하며 연애 감정을 느꼈다. 연애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지만 연애 감정은 또렷한 것이었다. 연애를 꿈꾸면서도 이룰 수 없는 현실이 비참하여, 곧 인기 아이돌의 펜팔을 탐색하며 읽어댔고, 그러면서도 나 역시 펜팔을 써보기도 했다.(물론 조회수 0에 빛나는 망작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내가 덜컥 연애를 시작했다.
실은 그가 내게 제안한 건 나와의 연애가 아니라, 어장관리 중인 여성 몇을 두고 진지하게 의논해달라는 거였다. 약 3, 4명의 여성들을 리스트업 해놓고선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니 함께 살펴보고 후보군을 좁혀 달라는 것. 연애 고자였던 나로써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도 나와 별다를 것 없이 연애에 관해서라면 성실하게 차이는 쪽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스스로 연애를 선택한 쪽이 아니었으니 그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나는 리스트에서 한 여자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순가련한 여성 하나를 1위로 꼽아 그에게 전달했다. 그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열렬히 고백 공격을 날렸고 또한 무수한 거절을 당했다. 결국 패배를 인정한 그가 돌아선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그는 쓰디쓴 연애의 실패를 토로했다. 처음에는 그의 하소연이 듣기 싫어 건성으로 장단을 맞춰 주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하소연은 어느새 그의 일상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일상은 놀라우리만큼 흥미진진했다. 누군가와의 만남, 유머, 그리고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 아끼는 음반의 공유 등으로 채워져 있는 그의 일상이 단조롭지 않았다. 그는 나와 취미를 공유했고,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의 발라드 취향과 나의 인디락 취향이 하나로 포개어 가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가 길어지면서 나는 연애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을 점점 알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고백 공격을 했다. 약 10일 쯤 망설이던 나는 그가 바라던 대답을 했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지루하지 않은 하루가 쌓여갔다. 자주 웃고 이따금 '함께'라는 마음을 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어느날 매우 어설프게 프로포즈를 했다. 그것도 소극장 공연 중에. 정말 이 남자는 드라마나 영화를 한 편도 참고하지 않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창피한 고백을 했다. 그렇지만 이미 사건을 벌어졌고, 모든 관객들은 미리부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프로포즈를 승낙해야만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이미 스몰웨딩의 버진로드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조그마한 부케를 왼손으로 쥐고 있었고,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환하게 축복해주었다. 시어머니가 될 분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제 여자친구에서 며느리가 되고나니 세상이 뒤죽박죽인 것만 같았다. 여자친구에서 며느리가 되는데 필요한 것은 '별다른 일 없이 평탄하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지금과 같이 함께 하는 것, 말이다. 평온한 가운데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 이처럼 사는 게 마치 영원한 시간을 약속하는 듯이.
문제는 내가 여자친구에서 아내가 될 생각은 할 수 있었지만, 며느리가 될 생각은 미처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는 너무도 평탄하게 흘러갔으며 어쩌면 어설플 수 있는 구석까지도 적당히 덮으며 지나갔다. 그러면서 발생한 건 며느리로 변신하는 마음가짐을 전혀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시댁에 대한 긴장도 갈등이 발생할 여지를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결혼이 가져다 줄, 어렸을 적 동화책에서 만났던 글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재현만을 생각했다.
"돈 줄게. 나가 살아라."
라는 말이 곧 떨어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며느리의 'ㅁ'도 마주하기 싫었다. 그것이 진실로 내 현실이라는 사실이 거북했다. 현실을 부정하면 할수록 나는 고부갈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예전에 봤던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 왜 저를 고통스럽게 하시나요? 그 한 마디로 시어머니의 가슴을 파고들면서부터 우리의 전쟁은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해서 잘 살기만 하던데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할까? 항상 잠자리에 누워 결혼을 선택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이 질문을 하곤 했다. 비교는 마음을 멍들게 하면서도 아직 학부 신세를 면치 못한, 사회인으로서의 자격과 경제적 기반이 약한 나를 계속해서 때렸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싫은데요?"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자 한 방 먹었다는 듯 시어머니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을 보면서 결심했다. 누가 더 빨리 이 집에서 나가나, 어디 한번 대결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