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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Nov 07. 2024

시어머니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1)

정화를 필라테스 문화센터에 강제로 등록시켰다. 

정화는 늘 그런 편이었다. 구속보다는 자유를, 자유보다는 더 큰 바다를 원하는. 정화를 막아서는 그늘은 없었다. 정화의 인생은 은퇴 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었다. 직업 전환과 취미 생활의 시작, 옛 친구들과의 교류. 어느 것 하나 틀어짐없이 정화를 단단히 만들어주고 있던 것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정화의 일부가 되어갔다. 정화는 30년 넘게 일하던 직업을 그만 두었고, 그 낯섦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정화는 신선한 발걸음이 좋았다.


갑자기 정화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다리 위가, 무릎이, 그리고 허리가 아파왔다. 정화는 시려운 다리를 움켜쥐고 꽤 오랜 시간을 고통스러워 했다.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병원을 가지 않는 정화가 퍽 답답했다. 병원을 가더라도 동네 내과 정도만 방문했다. 이 병은 그런 쪽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정화는 병원비를 아끼기 위해 단골병원을 들러 간단한 처치를 했다.


그러던 정화가 쓰러졌다.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고통을 어찌할 수 없어 정화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한참 울었다. 정신을 차린 정화가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찾아간 곳은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정형외과였다. 다행히 정화의 눈앞에 그 병원이 있던 것은 천운이었던 것만 같다. 정화는 얼른 병원을 향했고, 입원했다.


정화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병원 아래, 보행자 도로에서였다.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보호자조차도 병실 방문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나는 정화를 만날 수 없어 애석해하며 전화통화를 했다. 만일 출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정화는 찾아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찾아간 병원 건물 앞에서 정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깜짝 놀란 정화는 전화를 받고서 병원 복도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쳐다봤다. 정화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내가 손을 들어서 마구 흔드니 정화도 손을 흔들었다. 날마다 보던 얼굴이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편으로는 정화가 나에게 그런 존재였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정화가 무릎 시술을 받고 퇴원한 지 꽤 되었다. 정화는 아픈 무릎을 낫게 하기 위해서 걷기 운동을 서슴없이 강행했다. 정화는 1시간에서 2시간이 넘도록 걸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길래 시간을 조금 줄였다. 정화에게는 다른 종류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 차렸을 때는, 그런 소견을 들었을 때였다.


다리가 건강하던 시절의 정화. 함께 해바라기 밭을 구경하러 갔었다.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잘 걷던 정화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정화를 필라테스반에 등록해버렸다.


온전히 나의 의지였다. 정화의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았다. 정화에게 필라테스반에 등록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필라테스가 무엇인지,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요가와는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다가 "얘, 그건 끊어라"라며 애써 힘들게 등록한 내 노력을 일축시켰다. 뭐, 필라테스 반에 등록하는 게 뭐가 힘드냐고 할 수 있냐만은 인근 마트 내 문화센터라고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치열한 클릭 경쟁 속에서 종화와 나, 이렇게 두 명의 아이디로 각각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재빠름이 필요했다. 그러니 정화에게 무릎을 위해서 근력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필라테스를 필히 할 것을 주장했다. 온종일 내 얘기를 들어온 정화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 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필라테스 반의 첫 날이 왔다. 나는 이전의 계절학기 반에서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정화도 함께 올 것이라 예고했기 때문에 정화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었다. 필라테스 반의 문을 여는 정화. 나란히 앉아 필라테스를 마음껏 즐기는 정화.


"안녕하세요...."


수줍게 문을 열고 정화가 들어왔다. 나는 이런 환대에 익숙하다는 듯 정화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탈의실이 없나요?"

"네. 탈의실 대신 화장실에서 갈아 입으셔야 해요."

"선생님 오시기 전에 빨리 입어야겠구먼."


정화는 가방에서 운동용 검은 쫄바지를 꺼내 화장실로 달려갔다. 정화의 몸놀림이 신속하고도 조심스러웠던 게 퍽 재밌어서 혼자 조용히 웃었다. 돌아온 정화는 당장에 필라테스를 시작해도 좋을 만큼이나 매끈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단정하지만 신축성이 있는 옷차림. 나는 그런 종화가 좋았다. 종화가 사용할 매트를 빳빳이 펴주었다. 종화는 잔뜩 긴장했지만, 나는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실 거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7시가 되었다. 필라테스 반이 시작되었다. 정화는 흔들리던 호흡을 잡았다. 자, 이제 다리를 모아 앉았다. 손바닥을 마주 대고 서로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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