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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Nov 21. 2024

시어머니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3)

과연 시어머니는 자발적으로 운동을 갈 것인가!

 필라테스를 하고 나서부터는 우리의 화요일이 곧 운동 정모날이 되었다. 어머니는 항상 10분 전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30분 전에 미리 와서 정화의 자리까지 맡아두고 있었다. 운동을 하는 다른 멤버들도 처음에는 "또 오셨네요?"하고 반겨주다가 지금은 "오셨어요~"라며 다정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이토록 정화의 일상에는 운동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고, 정화에게는 유일한 운동이자 노화의 순환을 착실히 거스르며 건강을 지키는 민간요법이 되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도, 폭염이 쏟아지는 날도 정화는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그런 성실함은 상당히 본받아야 할 점인데 나는 덥다고 해서 아니면 비가 많이 와서,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출장을 가서 라는 온갖 핑계란 핑계는 다 들이대며 운동을 빼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6개월이 지나갔는데 정화는 눈에 띄게 건강해졌고 습관처럼 운동을 하게 되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건물 현관 밖으로 비가 오고 있는지 살펴보다가 발을 헛디뎠다. 그러다가 아래로 또 아래로 추락했다. 그날은 마침 정형외과를 가는 날이었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인해 터진 허리디스크를 꾸준히 치료받아왔는데, 하필이면 다가온 진료일에 그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정형외과를 찾았을 때,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필라테스를 못 가면 어떡하지?'


그건 정화를 외롭게 남겨두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결석한 날이야 뭐, 3주에 한 번씩 핑계를 대며 결석을 할 정도였으니 그나마 용납은 될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다리가 붓고 다른 방향으로도 돌릴 수 없는 상황인지라, 처음에 굴러 떨어졌을 때는 마비 증상이 왔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허리 진단을 다시 점검했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물어보셨다. 어디 아픈 곳이 있느냐고. 낯빛이 안 좋고 식은땀이 난다면서. 아, 숨길 수가 없겠는데. 그제야 나는 순순히 실토했다. 방금 계단에서 굴렀는데 아무 이상이 없고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그러자 선생님은 양말을 벗으라면서 아픈 곳을 콕콕 만져댔다. 엑스레이를 찍어야 할 수준이란다. 이럴 수가!


엑스레이를 찍기 전,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정화 생각이 많이 났다. 이제 필라테스반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두 번 다시 필라테스를 할 수 없는 걸까? 엑스레이를 찍은 몇 분 후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께서는 다행히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진 않았다고 했다. 대신 골절이라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왔다. 나는 간호사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낯설디 낯선, 푹신하면서 딱딱한 깁스를 차게 되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정화 생각이 많이 났다. 정화는 분명 다음 주 필라테스반에서 배울 동작을 미리 예습하고 있을 것이었다. 정화에게 다리를 다쳤다는 말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날 나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것저것 일정을 수행하면서 자꾸만 정화를 생각했다. 정화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독립적인 정화는 필라테스반에 금방 적응하게 되었다. 꽃을 좋아하고 섬세한 정화에게 필라테스는 새로운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안녕하세요!"


으레 하는 인사말로 현관문을 열었다(나는 "다녀왔습니다"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정화가 마중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겠구나, 싶어 다리를 짠 하고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하고 소리치는 정화에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정화가 하하, 웃었다.


"한 번쯤은 구를 줄 알았어. 으휴."


정화는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집안에서 한 덜렁거림을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게 언젠가는 벌어질 법한, 어쩌면 꼭 일어났어야 할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나는 쑥스러웠지만 뻔뻔하게 "아이, 사람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하고 대꾸했다. 정화는 김치찌개 끓여놨으니까 저녁이나 먹자고 말했다. 이렇게 간단히, 능청스럽게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정화가 감사했다. 만약 괜찮니, 어쩌면 좋니, 하는 식의 말을 했다면 곤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짓궂은 태도는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필라테스는 못 가겠네. 혼자라도 다녀와야지 그럼."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아이, 뭐 거기에 영숙이도 있고 미희도 있는데 뭐가 심심해."

"그렇군요."


그새 만들어놓은 든든한 친구들이 있으니 걱정 말라는 정화. 정화는 운동을 빼먹지 말아야 한다면서 너 없이도 혼자서 운동을 가겠다,라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 말에 온종일 고민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두 번, 세 번 여쭈어보아도 정화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화요일에, 정말로 정화는 바람처럼 필라테스를 가 버렸다. 어쩐지 내가 시어머니를 과잉보호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한 정화의 필라테스반을 떠올리니 입에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번주에 깁스를 풀지 말지가 결정된다. 다행히 부기도 많이 빠졌고 고통도 줄어들었으니 아마 깁스를 풀지 않을까 싶다. 아직 회복은 더 기다려야겠지만, 그래도 얼른 나아서 정화와 함께 필라테스를 하고 싶다. 머리를 핑 돌게 하는 다운독 동작과 팔다리를 꼬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코브라 동작도 그립다. 정화를 위해 사둔 요가밴드로 허리 운동을 간신히 해내면서 곧 다가올 필라테스반을 하얗게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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