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단우 Dec 05. 2024

시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

정화가 붓을 잡더니 본격적인 그림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정화는 행정복지센터의 드로잉 수업을 기대했지만, 막상 수업을 들으니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수강생들은 초급반, 중급반으로 나뉘어 각자 부여받은 과제를 그려내고 있었다. 워낙 수강생 수가 많다 보니 정화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며 가르쳐 줄 선생님은 제 나름대로 분주했다. 이건 이전에 일대일로 수업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갭이었다. 정화는 수업이 난리 중의 난리라고 호소했다. 그렇지만 수업료를 냈으니 이번 학기까지만 다니기로 결심했다.


정화는 부지런히 드로잉 수업을 받았다. 첫 번째로 그려야 할 선생님의 과제를 뚝딱 해치우고 나서,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스케치하고 채색했다. 그전에 그렸던 아크릴화와는 전혀 다른 수채화 화법으로 그리려니 터치감을 익히려 노력했다. 정화는 물의 번짐과 농도를 달리 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적 시도를 융합하고 있었다. 그리다 남은 그림들은 가방에 꼭꼭 싸 오고서는 집에서 마저 그려냈다. 그렇게 완성해 낸 그림들이 한 점 한 점 쌓이면서 정화의 붓터치도 제법 그럴싸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개인전을 열어도 될 정도의 그림들이 쌓였다.


스케치 모작을 하는 정화. 책상은 쿠팡에서 산 간의 협탁이다. 스케치북과 펜은 화방에서 직접 구입했다.


정화는 진지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더니 드로잉 수업에 참여하는 멤버들에게도 점차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중에 몇몇은 수업 후 정화와 함께 점심을 먹거나 티타임을 가지며 그림 세계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정화는 실력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상당히 발전해가고 있었다.


실은 정화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열정적으로 끝마치려는 성정의 사람. 그 고집은 선한 방향으로 흘러 모두를 감탄하게끔 만들었다. 정화의 실력이 향상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쉬운 것은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실력으로는 아마추어야."

"전시회 이런 건 관심 없어."


여러 가지 얘기들로 정화는 전시회를 여는 것을 망설였다.


완성된 정화의 스케치. 1시간가량 그린 끝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드로잉 수업반 사람들과 함께 단체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딱 하루, 야외 공원에서 작품들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철망 구조물에 작품을 넣은 액자를 걸 터였다. 정화는 다이소와 쿠팡을 찾아다니며 작품들의 사이즈에 맞는 액자를 구입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자랑스럽게 전시했다. 그것이 정화의 첫 전시회였다. 나는 일정상 지방에 출장 중이라 직접 찾아가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화의 첫 전시회가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정화의 환한 미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정화의 수채화 연습 노트.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특히 오른쪽 작품은 상반된 이미지를 부드럽게 보여주려는 전략을 사용했다.


나는 꿈을 꾼다. 정화가 집을 떠나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자기만의 작업을 할 수 있기를 말이다. 형편상 작업실을 구하진 못하지만 때때로 그 사실이 서글프고 참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정화는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려 한다. 환경 탓, 남 탓을 하면서 책임을 다 하지 않으려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아직도 정화는 목마르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고 새로운 그림들을 그리고 싶어 한다.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자연물에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시도가 특이하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세월의 고정관념 때문에 생각이 딱딱하다는 건 정말로 선입견이다. 이렇게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사고의 정화를 보노라면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가끔씩 가족 카톡방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올리는 정화가 사랑스럽다. 언제까지고 정화가 그리는 인생을 살았으면 싶다.


정화가 그린 눈 속의 정경. 눈이 내리는 것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