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놀라운 실력은 화폭을 넘어서고 있었다.
정화는 드로잉 수업을 받으면서 날개를 단 듯이 스케치북 위를 날아다녔다. 급기야 수업반 동기들을 통해서 질 좋은 종이를 추천받아 쿠팡 직구로 종이들을 구입해나갔다. 정화의 터치감은 과감하면서도 섬세하여, 수려한 작품들을 만들어나갔다.
한번은 정화에게 물었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면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요?"
거실에 놓인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수채화 붓을 물통에 씻던 정화가 말했다.
"응. 안 그래도 병원에서 쉬라고 하긴 하는데.... 어쩌겠어. 이미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겠지."
정화는 쉼없이 그림을 그려댔다. 그건 어쩌면 몇 십년 간 펼쳐내지 못했던 예술적 욕망을 급속도로 펼쳐낸 것이리라. 정화는 식사도 거르면서 아무 TV채널을 틀어놓은 채 작업을 진행했다. 어떨 때 보면 아예 소음이 듣기 싫다고 하여 TV까지 끄고 작업에 집중했다. 물어보면 마음의 소리와 TV의 소리가 뒤섞이기 때문에 작업에 매우 방해가 된다고 했다.
정화는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때때로 동창이 사는 충청도로 여행을 가곤 한다. 정화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날은 영락없이 그림의 소재들을 한껏 얻는 날이다. 정화는 작은 들꽃도 빠짐없이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또 시골의 호젓한 풍경이나 여유로움 등을 생생한 감각으로 재생하여 그림으로써 표현한다.
또한 정화는 손놀림이 굉장히 빠른 편인데 그것이 어떻게 세세한 표현과 맞물려서 드러날 수 있는지가 참 미스터리하다. 나도 정화의 빠른 터치감을 따라해보려 했는데, 선긋기와 명암 스케치에서 이미 망해버렸다. 정화가 그린 그림들은 환상적인 정취를 풍겨낸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정화만의 감성으로.
정화는 병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감각을 건강보다 더 앞서 세우고 있다. 그것이 독이 될 때도 있어 요즘은 하루를 꼬박 작업을 멈추고 쉬는 날로 정했다. 그것이 정화의 예술 세계에 있어 유일한 안식이 된다. 그렇지만 다음날이 되어 더욱 열의를 가지는 걸 보면 안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정화는 못 말리는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정화가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오래된 스케치를 발견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에 남겼던 여러 작품들이 마음을 시큰하게 한다. 정화의 서글픈 세월이 서슴없이 달려온다. 이토록 소중한 꿈을 지닌 그녀에게 인생은 너무나 모진 생채기를 냈다. 그래도 정화는 현재에 만족한다고 했다. 자유롭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화폭에 옮겨 담으면서 그릴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는 글쓰기의 기회보다 다른 요소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참 부끄러운 인상이 된다. 정화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모작하면서 그런 마음을 보다 넓게 키워갔다. 이제는 모작을 넘어서서 사진에 담겼던 느낌을 주관적인 해석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
실은 정화에게도 과거가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 도예 명장의 수제자였다. 도기를 빚고 가마에 굽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화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전향했다. 캔버스 위에 붓을 올리던 그녀는 거칠면서도 세심한 작업을 요하는 도예 전공자가 되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가마를 볼 때마다 정화는 그때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현재 그 가마는 인천에 있는 조카가 명장의 기술을 이어받은 덕분에 고스란히 유지 중이다). 정화는 힘들었지만 보람은 있었던 그 작업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선한 경험이었고 자신의 길을 탐험하는 하나의 자리였다고 보았다.
정화의 과거와 현재에는 '미술'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이 놓여 있다. 방향은 다를지라도 창작을 해 나간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 그 두가지 창작을 담아온 정화의 그릇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정화는 정말 참 예술가이다.
오늘 정화는 드로잉 수업을 받으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번에도 그려올 작품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정화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오겠지, 싶어 혼자 빙그레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