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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플랫폼 디자이너로 이직하기

by didi

'어쩌다 보니'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요즘 제 일상에도 어쩌다 보니 변화가 생겼는데, 변화의 원인 중 하나는 이직일 겁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플랫폼 디자이너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TMI지만 저는 결정을 하는데 확신이 필요한 사람이고, 그 확신을 갖는 데까지 오래 걸리는 편인데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나름의 청사진을 그리며 고민을 거듭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커리어 또한 어쩌다 보니 제 계획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30년을 그리며 일을 시작했지만, 일을 하다 보니 디자인 시스템의 구조를 개발과 맞추고 논의하는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규칙을 만들고 내가 만든 규칙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잘 따라주며, 규칙을 통해 업무 효율이나 제품이 개선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만큼 시간을 들이다 보니 오롯이 이 일에 시간을 쏟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AI 시대 가운데서 플랫폼 디자이너로 이직을 선택하며 제가 했던 고민과 나름의 첫 이직 후기를 나누고자 작성합니다.


짐 싸는 중..




AI 시대 금방 대체되진 않을까?

요즘은 어딜 가도 AI를 언급하고, 어떤 제품에나 AI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플랫폼 디자이너를 선택하기 전 가장 큰 걱정은 AI로 금방 대체될 선택지는 아닐까였습니다. 당장에도 피그마 Make, 프레이머, 버셀 v0 등 프롬프트만으로도 UI를 딸깍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UI 영역은 진입장벽이 낮아졌고, 이는 기업에서도 채용 대신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장고 끝에 디자인 시스템은 UI를 넘어 조직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창의적인 영역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떤 크기로 어떤 색상의 버튼을 만들어줘'라는 프롬프트에는 요구대로 작동하겠지만, 우리 조직에서 버튼 컴포넌트가 왜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어떤 효용이 있을지에 대한 판단과 설득은 사람의 몫입니다. 컴포넌트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특정 Variants가 우리 조직에 적절할지 조직 문화와 구성원을 이해하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시장의 시스템을 학습하는 것 이상의, iOS 26의 Liquid Glass와 같이 시장을 선도하는 스타일을 고안하는 것(좋은 디자인인지와 별개로..) 또한 AI가 아닌 플랫폼 디자이너로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Liquid Glass (출처: Apple Developer)



AI와 인간 중간의 역할

AI 때문에 대체되지 않을까를 걱정하며 역설적으로 제가 내린 결론은 AI와 인간의 중간에서 연결을 돕는 역할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였습니다. 그리고 AI와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돕는 일이 플랫폼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AI향 제품에선 대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요구사항을 입력하고, 입력된 내용을 AI가 이해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답변을 생성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제공합니다. 이 과정을 끊김 없이,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자연스러운 연결의 중심엔 UI 요소의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지금까진 hovered, pressed와 같이 정적인 상태만을 정의했다면, AI향 제품에선 연속적인 '과정'의 인터랙션을 제공합니다. AI가 답변을 생각하는 과정 전체를 예측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도록 단계별 인터랙션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AI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도울 인터랙션을 설계하는데 더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고, 플랫폼 디자이너로서 UI 요소들의 인터랙션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춘다면 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으로 플랫폼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키워야 할 역량이 선명해졌습니다.



조직의 목표에 따라 내 파이가 넓어진다.

저는 어떤 결정을 할 때 어려운 선택지를 고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직은 어려운 선택지이자 잘 고른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 조직에서 디자인 시스템의 가장 큰 목표는 효율이었습니다. 여러 제품, 여러 사업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과 완벽히 일치된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성을 최대한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품에 제공하기 위한 컴포넌트의 기능, 형태를 어디까지 제공할지에 대한 기준을 접근성으로 삼고, 꽤나 엄격한 제한을 두었었습니다. 반면 현 조직의 목표는 높은 자유도입니다.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제한하지 않을 만큼 유연해야 하면서, 디자이너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추구합니다. 사용을 강제하기보단 권장하다 보니 잘 쓰이기 위해 심미성이 주요 골자로 여겨집니다.


처음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시스템과 현조직의 디자인 시스템의 목표 간의 괴리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지난 조직에서 최우선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뒤에 두었던 부분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례로, 툴팁 Arrow Tip의 비율과 곡률의 심미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하는 환경이 어디서나 주어지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을 줄이자면... 성장이 최대 도파민인 저의 경우엔 직무 전환과 이직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직은 여러모로 어렵지만 현 조직에서 성장이 멈춰있다고 느낀다면 이직을 통해 나에게 주어지는 기대치와 영역을 넓혀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두의 커리어에 하나의 정답은 없겠지만, '어쩌다 보니' 각자에게 맞는 방향으로 흘러가길 응원하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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