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창문 밖을 보노라니 일련의 잠자리 떼가 날렵하게 비행 중이다. 영역확보를 위해서인지 먹이활동인지 알 순 없지만 한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나타나는 이들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지금은 끝물의 매미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잠자리와 겹치는 시기다. 곡식과 과일은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때이기도 하다.
나는 잠자리에 대한 추억이 많다. 학명에 따른 명칭은 몰랐지만 예로부터 구전을 통해 배운 대로 쌀, 보리, 고추, 왕, 실 잠자리 등으로 불렀다. 곡식류를 먹지 않는 제비들에게는 이들이 훌륭한 먹이였다.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어미가 입에 물고 있는 실체를 보노라면 잠자리가 많았다.
특이하게 생긴 눈 때문에 그들을 포획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잠자리는 위험을 감지하면 바로 급상승한다. 포식자들을 잽싸게 따돌리기 위해 그들의 날개는 접히지 않고 항상 펴져 있는 상태로 진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맨손으로 그들을 잡아보려는 시도는 매번 보기 좋게 빗나간다.
어릴 적, 나에게 잡힌 잠자리 포로들에게 먹이랍시고 들풀을 주었다. 이들이 조그만 곤충만을 먹이로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서 한 행동이었다. 생물 수업 시간에 졸았거나 책을 멀리해서 나타난 결과다. 이들은 우리나라 곤충 생태계에서 사마귀와 장수말벌 다음의 포식자라고 한다. 곤충계 서열 3위쯤 되는 셈이다.
특히 여름 내내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나 깔따구의 천적이라 하니 사람과 동물 입장에서는 유익한 곤충임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모기에게 하염없이 쫓겨 다니지 않으려면 이들의 개체수가 늘어나도록 협조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의 개체수는 예전 같아 보이지 않는다. 농약등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 때, 넓지막한 돗자리에 붉게 물든 고추를 널어놓곤 했다. 그때는 자연 햇빛에 의존해서 건조했으므로 말 그대로 양질의 태양초인 셈이다. 고추를 널고 있으면, 잘 익은 고추만큼 몸통이 빨간 잠자리 녀석들이 어디선가 날아와 주위 상공을 맴돌면서, 가을 초입의 한적한 시골 정취를 완성해 주곤 헸다.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일평생 온몸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신 어머니는 무릎과 팔이 쑤신다며 비가 내릴 상황임을 직감했다. 고된 일로 항상 바빴던 당신은, 놀이에 정신 팔린 철딱서니 없는 나에게 이런 요청을 하셨다. "넷째야 비 오려나 보다. 고추 널은 돗자리 끌어다 처마 밑으로 옮기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