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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May 18. 2024

남녀는 다투도록 설계되었다

<부부의 날을 맞아 서로 보듬어 주자(3)>

달력을 보니 5월은 가정의 달답게 기념일이 많다. 밑으로 내려가니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동 기념일은 그동안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날은 아니었다. '이런 날도 있었군'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 현상을 보면 혼인이 점점 줄어들고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모두가 관심을 가지면 좋을 듯하여  부부의 날을 앞두고 나의 일상 속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제정사유를 읽어 보니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가자는 취지로 어느 목사 부부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최근 사회문제인 가족해체 현상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21일로 정한 사유가 재미있다. 둘(2)이 서로 결혼해서 하나(1)로 성장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 가장 질투를 유발하는 날이라 하는데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독자 여러분의 가정은 화기애애한지 궁금하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상당히 많이 다툰다. 나이가 지긋해지면 조금 덜 하려나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더 힘들다. 정부와 의사협회처럼 기약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우리 부부도, 만약 같은 방향이 아니고  마주 보고 달렸으면 벌써 빅뱅이 발생했을 것이다. 일심동체는 옛 어른들 시절의 얘기이고 지금은 이심이체(二心異體)의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네이버)



우리 부부가 다투는 예를 들어보겠다. 은퇴 후 나의 현금흐름을 간략히 정리하면 국민연금 수령액과 밑천이 드러나기 직전의 예금을 분할 인출하여 어찌어찌 살고 있는데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인 셈이다. 그래서 주택 규모를 줄이고 외곽으로 이전 후 유동성을 확보하고 싶다. 


 하지만 집을 팔아야 생각하던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배우자도 큰 틀에선 동의한다. 그러나 전혀 진척이 없다. "다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데?" (우리 집만 오르나? 하면서 목소리 높이면 또 싸운다) "새롭게 갈 곳은 전철역이 가까워야 하고 편의시설, 병원이 있어야 하는데?" 등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사 갈 집의 요건은 이렇다. 붐비지 않아 조용해야 하고 지근거리에 공원이 있거나 야트막한 야산이 가까이 있는 곳을 희망하고 있다. 산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향후 재산가치 유지 내지는 상승과는 거리가 먼 얘기가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대화방식도 다르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좋겠는데 직선도로는 놔두고 우회도로를 택한다. "있잖아~ 있잖아~" 한다. ( ‘아니 뭐가 있다능겨’ )  나는 더 이상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으면 끈다. 그러면 설거지 중이던 옆지기가 대뜸 화를 낸다. “왜 끄느냐고!” 안보는 것 같아서 하면, 다 듣고 있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수돗물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멀티 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고 하는지.


며칠 전 대대적으로 할인행사 하는 곳을 동행했다. 경험상 쇼핑하는 날이 싸우는 날이기 때문에 제의를 거절하려다가 나에게도 필요한 품목이 있어 승낙했다. 알뜰주부가 많아서인지 인산인해다. 차량을 주차시키는데 근 한 시간이 걸렸고 카트를 받는데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옆지기는 신이 나서 필요한 품목을 모두 사재기하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안을 휘젓고 다녔다. 나는 녹초가 된 기분이 들었지만 표정관리를 했다. 귀가 후 아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 안을 정리했지만 나는 오후 내내 씩씩거리며 누워있어야만 했다.


(네이버)


연구자들 덕분에  남녀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차이를 받아들이고 상대를 존중해 주면 좋으련만, 이런 능력을 누구나 쉽게 구비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이기적 유전자는 이성 간 상호 대립을 은근히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대를 잇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화기애애한 모습은 애초부터 관심분야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란 존재도 만만하지 않다. AI도 스스로 진화하는데 인류는 말해 뭣하겠는가? 


이십여 년 전 어느 책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열이 있을 수 없고 주종관계는 더욱 아니다. 한편 각각으로는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며 상호 보완하는 관계인 것이다. 과거에는 차이를 차별로 악용했지만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성별 특성대로 해도 좋고, 젠더 구분 없이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다름을 받아들이면 갈등의 대부분이 해결된다.


매우 사적인 견해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바가 있다. 대체적으로 여성의 의견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존중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세상은 점점 더 깊숙이 소프트 사회로 전환되면서 그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남편 동지들께서는 혹시 떨떠름할지 모르겠지만 대세인데 어쩌겠나? 그렇다고 기죽을 일은 없다. 이해관계를 떠난 부부 사이지 않은가? 남성이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모든 건 변하고 거친 환경을 해쳐나가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으니까.


본디, 부부는 결혼 전에 완벽한 남이었다.  언제나 의기투합할 수 있으리란 꿈을 내려놓고,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인정하면 오히려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혼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새롭게 여는 것이며 사랑과 상호 존중을 연료로 삼는다.


* 이 글은 24.5.17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란에 "기억하세요, 부부는 결혼 전엔 완벽한 남이었습니다"란 제목으로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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