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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함이란 “타인의 관심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자세”다. 다른 표현으로 줏대가 있다. 심지가 굳다. 자신감이 넘친다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거만해선 곤란하지만 당당함이 결여되면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왜 우리는 당당하기 어려울까?
우선 문화적 영향을 들 수 있겠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응시하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세는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겸양과는 양립하기 어렵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너무 당당한 자세가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고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다.
다음 요인은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에서 기인한다. 소심함과 일맥상통한데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자신의 의지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다. 물론 세상을 살면서 타인을 의식하고 부담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피하다. 항상 정도(程度)가 문제다. 당당함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남의 시선에 맞춰 끌려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항상 타협하려고만 하니 본의 아니게 부탁하는 처지가 된다.
특히 용모 기준으로 타인과 비교하기도 주요 원인이다. 객관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소수의 우월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열위에 놓인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당당함의 최대 적인 의기소침이 여지없이 파고든다. 조물주는 우리를 차별 없이 공평하게 세상에 보내지 않았다. DNA가 조종하는 우열은 일종의 숙명이다. 이 부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대신 나만의 장점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천부적 요인은 개선하기 어렵다지만 자존감과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당당함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기질도 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다. 습관이 쌓이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당함이 너무 세속적일 때는 어떤 문제가 생길까?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다고, 많이 배웠다고 당당하면 안하무인이 되어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 세상을 조화롭지 못하게 만든다. 소수의 사람들이 타고난 우월인자 덕에 노력 대비 수혜가 크다면 겸손해야 할 일이다. 반대로 너무 당당하다면 평범한 다수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 이 경우는 당당함 보다는 거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허세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조금 더 안타까운 사례는 ‘당당한 척’ 하는 경우다. 세상 살아가는 방편일 수도 있겠으나 이처럼 피곤한 일은 없다. 항상 포장을 해야 하니 진실성이 결여되고 사안에 따라 대응하다 보면 일관성 유지도 어렵다. 아픈 척하는 환자의 치료가 제일 어려운 것처럼 ‘당당한 척’도 구제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꽃이 예쁜 척해서는 어림없고 아름다운 향기와 꿀을 지니고 있어야 벌, 나비가 모여든다"라고 했듯이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묻어 나와야 사람들이 모여든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해, 외모가 따라주지 못한다고 고민하는 소심쟁이 들이여 어깨를 펴자! 나만의 강점을 찾아보자. 내면의 당당함을 갖추면, 인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헤쳐나갈 길은 반드시 있다. 항상 미소 짓고, 경박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세상사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일이다. 자,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를 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