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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Jul 18. 2024

내가 나이가 들었음이 분명한 이유

(밀려오는 먹구름)


  나는 천둥소리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번개가 치고 나면 그다음에 굉음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매번 자연의 현상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무뎌졌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마이웨이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노래의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진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은 나의 의지대로 세상을 헤쳐 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어린이들이 보석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 사랑스럽다는 감정뿐이다. 이토록 귀여운 어린이가 어른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순수한 영혼을 바라보는 건 커다란 기쁨이다.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 시 스크롤바를 한참 내리고 나면 그제야 나의 출생연도가 나온다. 바닥부근에 와야만 찾을 수 있는 연도가 될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자부심과 자괴감이 혼재하여 밀려온다.


  산책시간은 동일하다. 그러나 조금씩 산책코스 길이가 짧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걸음걸이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려니 하지만 어딘지 뒷맛이 씁쓸하다. 받아들이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증거다.


  반주삼아 한두 잔 했는데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약 먹을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시원찮은 간이 허덕대는 모양이다. 내 몸속에선 약과 술이 뒤섞여 설상가상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캄캄한 곳에 홀로 있어도 그다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책 덕분에 어른이 된 후에도 귀신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도깨비보다 사람이 더 두려운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미디어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손아래로 느껴진다. 나는 가급적 출연자를 호칭할 때 ***씨라는 식으로 예를 갖춰 부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호명할 대상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과 며느리 간의 대화를 상당 부분 알아들을 수 없다. 특히 축약해서 하는 말은 외래어처럼 들린다. 매스컴도 부추긴다. 혹시 독자 여러분께서 "고터""얼죽신"이란 줄임말의 의미를 안다면 대단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나온 “읽씹”이란 표현은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듣기 민망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덜하다. 양가 부모님을 보내 드린 지 오래되었다. 세월이 지나는 만큼 그리움도 희석되는 모양이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하늘의 부름이 그렇게까지 거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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