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이나 홍시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감 나름대로 수많은 시련을 겪은 후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다. 완벽한 감이 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고비가 있다. 수분이 끝나고 처음으로 감의 형태를 띨 무렵 비바람에 상당 수가 땅에 떨어진다. 해거리를 한 후 다음 해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개체가 맺혀도 대다수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한다.
7월 중순 이즈음이 이차 고비다. 감나무도 누구와 함께할지 나름 살생부를 작성하는 모양이다. 벌레 먹거나 새들이 쪼아대지 않은 개체도 무심하게 떨어뜨린다. 조류나 동물세계에서 약한 새끼는 버린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식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적자생존이 자연의 이치라고 했다. 마지막 고비는 태풍을 견뎌내야 한다. 감 혼자서 아무리 버텨내도 가지 자체가 무너져 어처구니없는 종말을 맞기도 한다.
이년 전 나의 비망록을 보니 칠월 이 무렵에 이웃나라에선 애증의 정치인 아베 전 수상이 세상을 떠났다. 일 년 전엔 해병대원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또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우리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 인재였다. 이후로도 안전 불감증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배터리로 인한 화재, 급발진을 주장하는 황당한 차량사고, 자연재해 등으로 안타까운 생명들이 끊임없이 감처럼 중도에 떨어지고 있다.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던 끔찍한 일로 슬픈 이별을 하고 있는 이웃이 너무 많다. 가까운 이와의 이별은 힘든 일이다. 하물며 청천벽력 같은 일로 가족을 잃은 경우의 슬픔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냉정한 사람들은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생명이 천수를 누릴 순 없다. 생명체에게 중도 탈락은 숙명이다. 내가 탈락자 신분이 되지 않았다는 건 사실 운이 좋은 것일 뿐이다. 이처럼 “하늘의 귀여움”을 계속해서 받으려면 자기 관리에 철저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게 예측불허의 환경이므로 상황판단 능력을 기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위험에 너무 둔감하거나 병을 얻거나 사주경계를 게을리하면 중도에 떨어지고 마는 감 신세가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나대도 불편하지만, 자신의 생명보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곤란하다. 자연이 허용하는 범주 내에서 최대의 삶을 살다가 마무리하는 게 우리의 원초적 임무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