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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Jul 08. 2024

차라리 매미와 합창을 해보자

(어느 해 여름, 우리 집 방충망에 붙어있는 매미)


  본격적인 장마철에 들어섰다. 많은 비를 사전예보하고 있어 피해가 발생할까 봐 걱정이다. 자연은 감정을 가질 리 없으므로 공평할 것이라고 믿는다. 요즈음 일기가 매서워진 건 인간이 자초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환경보전에 힘써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매미들의 대량 출현은 장마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는 신호다.  처음에는 몇 마리가 우는 듯하다가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 위세가 대단하다. 얼마 전 매미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은 올해 천조마리의 매미 때가 창궐하리라는 내용이었다. "매미겟돈, 제트기 소음 같은 굉음 예고" 등 과장이 심한 표현이 넘쳐났다. 무엇이든 너무 과하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는 맞다.


  저학년 시절엔 곤충채집이라는 여름방학 과제가 있었다. 헤어진 모기장 조각을 이용하여 매미채를 만든 후 나무 주변을 훑고 다녔다. 내가 녀석들을 발견 후 살금살금 나무 근처로 접근하면  앵~ 소리를 내며 연기처럼 사라지곤 했다. 실망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루 종일 쌍심지를 켜고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놓쳤다. 어쩌다가 한두 마리 생포한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녀석들은 힘이 다한 개체였음에 틀림없다. 

    

  이들은 애벌레 상태로 5~10년가량 땅속에서 지내다가 밖으로 나와 성충이 된 뒤 한 달 정도를 산다. 수컷만이 우는데 따로 공명 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천적에 대항할 뚜렷한 자체 무기가 없다고 한다. 성충으로서 생존 기간도 비교적 짧다 보니, 개체 수를 대량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전에는 한여름철의 손님이라는 우호적 인식도 있었지만, 이들도 환경변화 때문에 날로 울음소리가 커졌고, 불청객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말매미라는 녀석이 내는 소리는 소음 수준이라고 하니 이들에 대한 호불호 역시 다양할 것 같다. 동시에 나무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 터라 해충에 해당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곡식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물며 매미 때문에 나무가 말라죽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나는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눈감아 주고 싶다.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소음 폭군인 그들도 애벌레 신분에서는 두더지가, 성충 단계에선 새들과 설치류가 천적이다. 목청껏 노래하고 난 후 살기 위해 자주 장소를 바꿔야 한단다. 우리 집 방충망에도 가끔 앉아있지만 나는 폰 카메라로 근접촬영만 할 뿐 놀래키지 않는다. 대신 녀석을 먼 거리에서 노리는 까치나 까마귀들이 없나 둘러본다. 그들은 방충망에 붙어있는 곤충류에게 쏜살같이 접근한 후, 놀랍도록 정확히 낚아채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한 여름이 진행된다. 우리는 더위와 매미로 인한 소음과의 사투로 진을 빼겠지만, 그들은 우리의 기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더욱 우리를 몰아붙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조금만  참아주면 어떨까? 그들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떤 존재든지 전성기는 한때다. 8월 중순만 되어도 그들의 위세는 서서히 퇴조하면서 초가을 풀벌레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매미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난 후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도 순수했던 시절을 계속하여 회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콧잔등에 땀이 몽글몽글 솟아나는 무더운 여름도 어릴 적엔 항상 즐거웠다. 마음먹기 나름인 것이다. 우리의 여름은 악명이 높다. 하지만 이 힘든 계절마저 도 자신의 소중한 순간으로 승화시키면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여름! 두텁지 않은 옷으로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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