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봉업 종사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벌이 애써 모아논 먹이를 빼앗는 인간의 행동이 내 눈에는 불편해 보인다. 배고픈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반드시 꿀성분이 필요한 사용처가 있다면 그 범위 내에서만 채취하여 벌의 희생을 최소화했으면 어떨까 한다.
우리가 기껏 농사지어 놨더니 어떤 불청객이 싹 쓸어 간다고 상상해 보라. 살 맛 나겠는가? 얼마 전까지 밤꽃이 한창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맘때쯤 벌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요즈음은 우리들 주위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야 벌들이 인간의 계략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나?
벌도 나름 진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과 공존을 꿈꾸고 협업하였는데 자꾸 ‘불공정 거래’를 한다면 방향을 틀 수 있지 않을까? 큰아들이 내차를 이용하다가 자신 소유의 소형차를 구입했다. 사무실에서 한참 떨어진 공터에 주차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밀봉업자가 주차장 주변에 설치한 벌통이 있어, 근처에 세워놓은 차량 지붕 위에 벌똥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린다고 투덜거렸다. 내 차를 이용할 때는 세차 한번 안 하던 녀석이 자신의 차라고 열심히 털고 닦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딱 일 년 만에 사정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벌 개체수가 현격히 줄어들어 꿀을 채취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영향인지 서식지 부적합 문제인지 알 길 없으나 갑작스러운 생태계의 변화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불길한 재앙을 예고하는 듯해서다.
벌과 나비가 귀해져 과일 먹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인공수분이 대신해서인지 과일 생산에는 별 문제없어 보인다. 그럼 그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나? 벌의 고유역할이 줄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해충이 아니기에 그냥 인간과 같이 동행하면 어떨까 한다. 간혹 방송에서 꿀을 채취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곤 하는데 이제는 방영을 멈췄으면 좋겠다.
무엇을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나의 경험상으로는 ‘꿀의 순도와 중고자동차의 상태’에 대한 설명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그만큼 속임수가 많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고 이물을 혼합하는 사례는 흔한 일이었다. 차에 대해 모르는 초보운전자가 중고자동차를 구입한 경험이 있다면, 중개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벌이 사라지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도태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인류가 개입되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 원상회복 책임 역시 우리에게 있다. 영양식품, 강장제 그만 찾으라는 신호로 이해하면 된다. 현재 우리는 충분히 오래 살고 있고 무엇을 덜 먹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된다.
조선 중기 문인인 이행(李荇) 선생은 밀봉가란 시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世人重利 輕生生(세인중리 경생생)" 즉, 인간의 잇속을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경시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들의 먹이인 꿀 대체물이라도 공급하지만 예전의 벌들은 꿀을 잃으면 바로 죽음이었기에 "蜂多餓死(봉다아사: 많은 벌이 굶어 죽다)"라고 슬픔을 표했다. 누구는 가진 자의 여유라고 비아냥거리겠지만 내 눈에는 심성이 바른 분으로 연상된다.
이제 아카시아 꿀, 밤 꿀 등은 추억 속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겼으면 좋겠다.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진액 다 빼앗고 값싼 인공물을 먹이로 제공하는 우리의 탐욕을 지금부터라도 멈춰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