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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Jun 26. 2024

용문사에서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다

(용문사 내 석탑과  우측 피뢰침 시설물)


  가족 모두 바람을 쐬기로 했다. 목적지는 양평군 소재 용문산 용문사, 경유지는 두물머리였다.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오전부터 보슬비보다는 조금 더 센 비가 계속 내렸다. 뜨겁게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보다는 차라리 비가 내리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바지 하단과 신발을 왕창 적시는 불편함을 제외하면 말이다. 궂은날임에도 산사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에도 이곳을 찾았었는데 그때보다 한층 제대로 정비된 느낌이 든다. 절 입구 좌측에 야영장 모습도 보인다. 들로 산으로를 외치는 야영 애호가들에겐 좋은 소식이 아닐까 한다. 걸음걸이를 천천히 하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이름 모를 꽃과 새소리, 물소리가 정겹다. 한창 녹음이 우거져, 무더운 여름이라도 여기는 별천지처럼 너무 시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길지 않은 구름다리를 지나는데 두 아들이 개구쟁이들처럼 흔들어 댄다. ‘인마’ 왕년에 유격훈련 제대로 받은 사람이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독송과 목탁소리가 너무나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몸과 마음이 치유를 받는 느낌이다.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그토록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까? 천년 전 통일신라시대부터 이 자리를 지켰다니 놀라울 뿐이다. 일부 보조 지지대가 있긴 하지만, 사람에 비유하면 허리가 꼿꼿하고 혈색이 좋은 건강한 노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혹시 모를 낙뢰에 대비하여 지근거리에 피뢰침을 단 철탑이 설치된 걸 볼 수 있었다. 귀한 유산이므로 만일에 대비하는 자세는 바람직해 보인다.


(은행나무 앞 목책에 설치된 소원 내용 매다는 곳, 한 어린이의 바람이 절절하다)


  우중이었지만 기념촬영은 생략할 수 없어 온 가족이 한 컷 했다. 큰아들 내외와 차남도 본인들이 희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때 부처님의 자비가 두루 넘쳐나길 바란다. 대웅전 우측 우물 중앙에 동전을 던지는 곳이 있었는데, 둘째가 한가운데에 던지는 걸 보니 옆지기가 드디어 캥거루 주머니를 치워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먹는 기쁨을 뒤로 미룰 수 없어 식당을 찾았다. 도토리묵과 이 고장 유명 막걸리로 목을 적신 후 보양식으로 점심을 했다. 오랜만의 외식이라서인지 음식 맛도 좋고 속도 든든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목적지 두물머리로 향했다. 궂은 날씨였지만 외곽도로까지 통행량이 만만치 않다. 올 때는 내가 운전을 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장남이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을 잘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어쩐지 불안하다. 아마 자식이라서 안전 운전하기를 바라는 염려가 작용하여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이곳 명물인 핫도그를 맛보아야 한다면서 며느리가 가게 앞으로 안내했다. 아직 소화가 덜 된 상태였으나 애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온몸이 비에 젖은 참새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물을 받아먹기 위해 몰려든다. 사주경계도 느슨하다. 사람에게 익숙해진 모양이다. 취식을 마친 후 한강변을 따라 걸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 속에 추억을 담고 있었다.


  여기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바로 나무 아래 근처에서 청둥오리 암컷 한 마리가 자기 영역을 지키겠다는 것인 양, 사람이 몰려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도 여유만만이다. 녀석은 야생성을 버리고 인간의 가축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아마 진화의 방향을 잘 못 잡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인간의 욕심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몸을 다친 후 날 수 없어 그런 게 아니라면 제 자리로 돌아가기 바란다.


(비 오는 날 두물머리 풍경)


  얕은 물가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오간다. 이맘때쯤이면 그들은 수초가 풍부한 얕은 수심으로 찾아와 산란을 한다. 오늘은 잉어 개체 수가 많지 않았지만, 운이 좋으면 많은 물고기들이 물살을 일으키며 몰려드는 장관을 볼 수도 있다. 엄청난 양의 알을 낳고 수정을 하겠지만 성체로 자라나는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태어난다는 사실도 기적이지만 별일 없이 성장했다는 것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인생살이가 힘들다고 하지만 야생의 미물들도 생존을 위해 물밑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중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가족과 함께해서 행복했다. 간혹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벗 삼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다. 짙은 녹색의 향연을 만끽하고, 멀리 보며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건, 어느 것보다 귀한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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