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딤돌 Aug 31. 2024

추석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들

  

(보름달에서 하현달로 가고 있는 모습, 얼마 전 이른 새벽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오는 9월 3일은 음력으로 8월 1일이다. 즉, 추석 보름달을 활짝 피워 내기 위하여 초하루 삭(朔)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 날은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가 일직선이 됨에 따라 육안으로 달을 볼 수 없지만 만월을 잉태하고 있다. 여기서 며칠 지나면 초승달이 나타난다. 시인들은 가냘픈 초승달을 보고 여인의 눈썹이나 귀걸이에 비유했다. 나는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 선생의 미인도가 떠 오른다. 

   

  오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늦둥이 매미들이 울기는 하는데 어딘지 맥이 빠진 울음소리다. 대신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하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일제히 터진다. 귀뚜라미, 여치, 쓰르라미 등일 것이다. 이들의 출현은 길고 더웠던 여름이 퇴장하고 있다는 반가운 신호다. 그나마 올여름은 모기 개체수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더위 앞에는 사람이고 미물이고 가릴 것 없이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올해는 습도와 더위가 끔찍했는데 모기들의 발호까지 있었다면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뻐꾸기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짝을 찾아 후대를 잇는 책임도 완수했고 뻐꾸기 새끼 둥지 근처에서 원격교육을 시킬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쯤 그들은 남이 키워 낸 새끼들과 함께 떠나는 여름을 신나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남의 자식 키우느라 진이 빠진 오목눈이(뱁새)는 분한 마음에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어리석은 짓을 반복한다면 구제불능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뱁새를 대우하지 않은 모양이다.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녀석들이 바로 뱁새다.


  천적이 나타나거나 긴급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다른 새들도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예외가 있는데 초저녁이 되면 야행성 소쩍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옛 가요 <낭랑 18세> 가사를 음미해 보면 어르신들은 소쩍새 울음소리를 신호로 삼아 야밤에 몰래 만났고, 물레방아 뒷간에서 밀회를 즐긴 모양이다. 당시에는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 했지만 사랑에 눈먼 처녀 총각을 누가 말릴 수 있었으랴. 소쩍새 울음소리와 물레방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그들의 애정행각을 전부 가려 주었을 것이다.


   시작과 마지막이 동일 선상에 있듯이,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도 한동안 동거를 한다. 칼로 무 자르듯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다. 곤충들의 다리에서 힘이 빠질 때 곡식과 과일은 자신을 힘껏 달군다. 가을 햇살은 따갑긴 하지만 풍성한 결실을 완성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다. 하늘은 너무 푸르러서 경외감이 밀려온다. 지금은 농경시대가 아니지만 추석만큼은 우리가 애초에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리켜 주는 방향등 같다는 생각이다. 추석은, 현실이 헛헛해도 마음만은 풍요로운 마법의 날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착해 빠진 이들을 응원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