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덕소에 살던 때 이야기다. 남양주 덕소 한강변에서 보자면 동북 방면에 산이 있는데 이름은 적갑산이다. 바로 옆에 팔당역 방향에서 오를 수 있는 예봉산이 있고 뒤편에는 수종사(水鍾寺)가 자리하고 있는 운길산과 형제처럼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북쪽을 향해 재를 넘으면 운길산 역이 나온다. 나는 도보로 이 구간을 몇 번 걸었는데 건강한 사람들은 산악자전거를 이용하여 고개를 넘나 든다. 과거에는 오지였을 운길산 방면 거주민들은 항상 이 재를 넘어 덕소읍내 장터를 이용했다고 한다.
짐을 가득 실은 지게를 지고 깊은숨을 내몰아 쉬는 촌부와 머리 위에 생필품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이고 가는 아낙네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의 나는 건강을 위해 자발적으로 거친 길을 넘고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던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주인공들은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인적이 드문 날에는 산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긴장하게 된다. 안내판을 보게 되면 이곳은 도토리가 풍부하여 멧돼지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가끔 출몰한다는 정보가 있고, 산입구 민가 주변에서는 간혹 들개가 출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들의 속성을 낱낱이 알 수는 없는 일이어서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약간은 위험한 이 길을 왜 걷는가? 정글에선 경쟁자에 불과했던 사람들도 이곳에서 길동무로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어 내가 안전해진다는 그 느낌이다. 얼굴엔 자연스레 미소가 피어나고 기꺼이 인사말을 건넨다. 길손과 헤어지면 다시 혼자다.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색이 사라지고 검색만 늘어난다.”라는 글을 보았는데 의미심장하다.
부모님이 떠나신 이후 명절에 귀향할 일이 없어졌다. 배우자와 과거 고달팠던 귀향행렬의 추억을 반추해 보기도 하지만 허전한 마음은 항상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다. 초저녁에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일찍이 잠이 들었더니 새벽 두 시경 눈을 떴다. 별짓을 해도 다시 수면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뒤척이다가 사물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여명이 시작되어 이른 산보를 택했다.
목적지의 중간쯤에 갔을 때였다. 우연히 고개를 들고 시선을 조금 멀리했더니 휴식장소 주변에 웬 생물체가 나를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 크기의 개였다. 주인도 보이지 않고 목줄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동물 특유의 눈빛이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함부로 등을 보이면 도리어 공격당할 수 있다. 나도 응시하면서 뒷걸음쳤다. 10여 미터 물러선 것 같은데 상대는 별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슬며시 돌아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등에 땀이 흥건했다.
산책은 망쳤지만 그 개와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 시각에 왜 녀석은 길 중앙에 서서 꼿꼿하게 버티고 서 있었을까? 나에게 도움이 필요해서였을까? 그냥 지나갔으면 녀석이 어떤 행동을 했을까? 나는 모험 대신 안전을 선택했다. 둘 다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유랑을 시작했는지 자발적으로 탈출한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안녕을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