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인민이 모두 평등하다는 교시와 달리 자본주의보다 더한 계급이 존재하는 걸로 보인다. 흙 수저 출신으로 추정되는 북한군 병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터인 쿠르스쿠지역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그의 유류품 속에는 <노동당 입당 청원서>라는 편지가 있다고 우크라이나 당국이 발표했다. 북한군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엄연히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동포로서 연민의 정도 있다.
북한에서는 혁명 관련 진골 후손이 아니고서야 특권층으로의 편입은 어려워 보인다. 이곳 아랫녘보다도 사회 전체가 부패했다고 듣고 있다. 체제를 불문하고 돈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공통현상인 모양이다. 숨진 병사 역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북으로 돌아간다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북 체제에서 짓눌려 살다가 자신의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드론이라는 살인로봇에게 귀한 목숨을 허망하게 내놓았다. 인간은 부모뿐만 아니라 국가도 선택하여 태어날 수는 없으니 어이하랴.
전쟁은 제물로서 젊은이를 요구한다. 그들은 복합적인 인간으로 성숙되기 전 단계라서 저돌적이며 선전선동에도 쉽게 빠져든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전쟁을 조종하는 자들은 이들의 불완전함을 적극 이용한다. 나이가 지긋해지고 자신을 중심으로 가족이 생기면 달라진다. 책임감 때문이다. 국가와 지도자가 정상상태라면 그나마 충성심과 가족의 안위 사이에서 고심하겠지만 무정부 상태라면 ‘내가 누구 좋으라고 싸워야 하나?’라는 물음을 맨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현역시절 레바논 해외파병 지원 의사표시를 했고, 독재자가 대북 보복작전을 독려했을 때 추호의 거부감 없이 손발톱을 잘라 짧은 유서와 함께 편지봉투에 담아 제출한 적도 있다. 일단 북으로 넘어가면 죽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았지만 국가와 부모형제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로 생각했다. 먼 나라 타국 전장에서 숨진 북한병사의 심정도 나의 현역시절 마음과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극도로 경멸하는 체제지만 북한군 전사자들은 그리운 조국이란 말을 서두에 꺼낼 정도로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가진 자의 자식은 군 입대 자체를 면제받거나 전투병이 아닌 후방 지원부대 소속으로 보신에만 신경 쓰다가 전역을 한다. 기초훈련소에서 총알 몇 발 쏜 게 군 생활을 통한 마지막 사격이었다는 말도 들었다. 인간사가 불공평 한 줄은 알지만 맥 빠지게 하는 소리다. 임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군인에게 최대의 예우를 갖추지만 정작 죽은 자는 기쁜지 덤덤한지 말이 없는 법이다. 앞으로도 위난이 발생하면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적극 나아가 죽음을 불사하라는 기득권자 집단의 겉치레 의전쯤으로 여겨진다.
북녘 부모라고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녀를 앞세우는 고통을 상명(喪明)의 아픔이라고 표현한다고 읽었다. 빛을 잃은 것처럼 온통 암흑천지라는 뜻이다. 자식 잃은 이의 주변에서는 조그만 보상과 애국자 집안이라고 추켜세우며 슬픔을 잊게 하려 노력할 것이다. 부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을 다물겠지만 자식에 대한 미안함으로 평생을 가슴앓이 하지 않을 수 없다. ‘못난 부모 만나 니가 이렇게 된기야...’
우리 국민의 의식은 종전과는 달리 많이 변했다. 나라가 나라다워야 국민이 한 방향으로 똘똘 뭉친다. 작금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 애국심이 절반 달아난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세력이 또다시 집권한다면 나머지마저 증발할 것이다. 그들이 국민의 보편적 감정을 무시하고 후안무치의 자세로 패거리 놀음하는 걸 보면 인내하기 어렵다. 감시하지 않으면 더욱 기고만장할 것이고 지켜보자니 암이 자라는 것 같아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