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관정제 衣冠整齊 >
옷이 날개라고 한다. 그렇다고 꼭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게다. 단정하게 입자는 쪽에 방점이 있다. 이 말을 한 단계 더 깊게 음미해 보면, 옷차림이 바르지 못할 경우 격이 떨어지는 행동을 할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경고까지 함께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옷차림이 흐트러지면 그에 걸맞는 저속한 행동거지도 따라다니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과거 나의 세대 예비군들은 볼썽사나운 광경을 자주 연출하곤 했다. 모자는 삐딱하다. 끈을 조이지 않은 상태의 군화를 신고 질질 끄는가 하면 상의 단추를 완전하게 채우지 않고 다니기도 했다. 통제가 심한 사회에서 지친 나머지 잠깐의 일탈이라고 합리화할지 모르겠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인솔자의 요청은 무시하고 거들먹거리는 게 예비군다운 걸로 아는 것 같았다. 귀가 길에는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마시고 담배꽁초 등 잔해물질을 아무 데나 투하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난다. 이들이 예비군복을 벗어던지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지엄하기 그지없다. 이유는 의관을 정제했고 집단의 일원이었다가 개인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처럼 이중성을 본성적으로 가졌기에 야누스의 유전자 전파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할 적 경험담이다. 평범했던 직장인과 자영사업자들이 IMF 영향으로 직장을 떠났고 가정해체로까지 이어졌다. 노숙자도 증가했다. 그들은 행인에게 간혹 술 한 잔 값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는 지나쳤지만 어느 날인가 갑자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상대가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눈동자가 살아 있어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나는 먼저 물었다. ‘날도 춥고 끼니 챙기는 것도 수월치 않을 테니 한겨울만큼은 시설에 몸을 의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통제받는 게 춥고 배고픈 것보다 싫다고 했다. 그리고 지하보도에 자리 잡고 눕는 게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처음 누울 때는 남의눈이 신경 쓰이지만 몇 번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적응이 됩니다.” 나는 실망했다. 그에게 건네주려 호주머니 속에서 쥐고 있던 돈 중 절반쯤을 덜어냈다. 나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의례적인 덕담을 건네고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
내 눈에 불편한 복장차림이 또 있다. 민간인이 군복류의 옷을 입는 경우를 말한다. 대중이 모이는 집회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육체노동 현장에서도 선호하는 형태의 복장인 듯하다. 전자의 경우는 제복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다.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 자신이 이런저런 군 경력자라고 뻐기려는 심리가 깔려있다. 진짜로 고생한 사람은 그런 과시행위를 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도 민간인에게 만행을 저지르는 부류는 정작 전투부대 요원이 아니라 후방 보급담당자 들이라고 한다. 약한 자 앞에서 센척하는 악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후자의 경우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전투복이 거친 현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최적화된 복장일 수 있다. 튼튼하고 오염에도 강하니 실용적일 수 있겠다. 착용하는 본인들은 모를 수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엔 짐짓 불편할 수 있어 문제다. 민간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깔끔하고 실용적인 '국민 근로 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시대별로 국민車가 있듯이 말이다. 전 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내면 다양한 의견이 집적된 멋있고 기능적이기까지 한 옷이 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 자신도 대다수의 군인들이 푸른 제복을 입던 시기에 베레모, 얼룩무늬 군복, 특전화를 착용하면서 자부심을 느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5.18 민주화 항쟁을 돌이키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마음을 접었다. 당시 부대방침도 외출이나 외박 시 사복을 입도록 권유했다. 강제할 순 없지만 군복은 민간인에게 일상적인 복장이 아님은 분명하다. 훈련, 의전 등 필요한 때 외에는 상시 착용을 삼가는 게 부드러운 세상 건설에 일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형님 상(喪)을 맞아 지은 詩중에 있는 일부 글이다. “의관을 갖추어서 시냇물에 비추어 보네” 자신의 상복 차림새를 점검한 것이다. 경우에 맞게 단정하게 입고자하는 진지한 자세다. 옷차림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 데나 앉고 눕고 싶어 진다. 비루해 보이는 만큼 비난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주야장천 등산복이나 트레이닝복 차림"도 곤란하다. 상황에 걸 맞는 단정한 옷차림 여부가 한 사람의 품격을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