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글 훔치기

by 디딤돌

필자가 모방(模倣)이란 단어에 대해 막연하게 느끼는 어감은 두 갈래다. 먼저 하나는 용어 속에 훔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여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다른 하나는 성장을 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선진 제도 견학을 통한 벤치마킹도 결국 모방이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따라 하는 것'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모방을 지적인 도둑 행위, 즉 표절(剽竊)이란 단어와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오해 인 듯하다. “모방은 창조의 전 단계, 표절은 창조의 적”이란 적절한 표현이 나의 오해를 푸는데 도움을 주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방을 통하여 오늘날의 내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고 타인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능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 수많은 화가들이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을 하더라도 훗날 명성을 남긴 작가는 소수에 불과했다. 후대는 모방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제2의 창조를 한 예술가만 기억한다는 뜻이다.


끊임없는 노력을 기반으로, 모방과 창조를 통해 필력을 향상하려 들지 않고, 그저 “글쓰기의 기술을 훔치려고만 한다.”는 글을 읽으며 나는 움찔했다. 마치 기본은 무시하고 기교만 넘보는 나를 나무라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내공 있는 필력을 원한다면 선결요건으로 평소 독서를 통해 저변의 지식이 탄탄하고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는 걸 안다. 예리한 관찰력 또한 중요한 요소다. 나는 지름길을 택하려 해서 부끄럽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책을 읽다가 멋진 글을 발견하면 메모용 노트에 적어두고 간간히 음미해 보는 것이다. 교훈적이고 재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들을 존경한다. 훌륭한 작가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새로운 글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무의식 중에 특정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만약 답습만 할 뿐이고 나만의 스타일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모방이 아니라 표절범일 것이다.


작가 지망생은 문전성시다. 하지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주요 주제에 대해서 이미 과거의 천재들이 선점한 영향일 수도 있다. 이는 글 쓰는 이들에게 회의감이 들게 하는 주요인 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겠다. 물론 나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임을 먼저 밝힌다. 우연히 죽음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읽은 적이 있다. 소름이 돋았다. 바로 이천 여 년 전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 있는 글이다.


몇 번을 음미해 보아도, 그는 현대인이 최신 과학을 통해 알게 된 사실까지 당시에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을 우주의 섭리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당시 여건상, 인도에서 창시된 불교관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도 그렇다. 고대 현인들의 통찰력은 전 세기를 통해 아우른다. 이 글을 접한 이후로는 죽음의 정의에 대한 어떤 수사도 현제(賢帝)가 한 말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연유로 신선하고 멋진글을 새롭게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홍수처럼 넘쳐난다. 저마다 책을 발간하면서 작가들은 독자들이 열렬하게 환호해 주기를 꿈꾼다.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일 년 남짓 되었다. 이따금 등재한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표현이 많다. 일부 글은 내릴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졸작도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남는 게 없는데도 장사를 계속한다”는 자영업자의 인터뷰를 보았다.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라는 말로 나는 변환해서 받아들였다. 그저 글쓰기가 좋아서 쓴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세속적 성공은 부차적이다. 우선 글을 잘 써야 하는 게 모든 요건에 앞선다. 브런치 작가 여러분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지면을 통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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